슬픈 신조어 '영삼되다'무려 15시간 30분 동안 나는 꼬박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13일의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30분까지. 점심은 자장면으로 정문 옆 잔디밭에 해결했고, 저녁시간 30분 동안만 주위 식당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밥을 먹었다.YS와 고대생의 정문앞 대치. 남들은 취재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총학생회가 주축이 됐지만 다분히 자연발생적으로 정문 앞에 모여드는 학생들. YS의 꺾일줄 모르는 고집. '수업권'을 주장하는 학생들과 'YS의 정치적 이용불가'를 주장하는 학생들간의 논쟁. "YS는 교재용"임을 학생들에게 설득하는 교수. 하필 그날 발표한 노벨 평화상으로 인해 DJ와 YS 두 정치적 라이벌의 극명한 명암 대비. 이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현장이 자주 있으랴.게다가 그 역사적 현장은 '유쾌한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오직 정문과 국제관 321 강의실만을 고집하는 YS를 향해 "노인네가 방광염 걸리면 어떡하냐"며 수군거렸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가끔씩 던지는 YS의 말 한마디한마디는 오히려 코메디였다.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깜짝 까메오 출연은 자칫 단순할 뻔했던 스토리 구성을 더욱 탄탄하게 해줬다.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새벽,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한 독자의견을 보며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 '국어사랑'이라고 밝힌 독자는 "국어사전에 새로운 단어 등제"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삼 : 명사, 특정한 장소에 똥오줌도 못싸며 들어가지도 못할 때 쓰임. (사용예제) 지하철에서 화장실이 가고싶지 뭐야. 헌데 화장실에 가보니 모두 사용중이더군. 오랜동안 '영삼'됐지 뭐야. 넌 그토록 지독한 '영삼'은 모를꺼야."얼마나 웃었을까. 눈물까지 흘리며 웃다보니 문득 슬퍼졌다. 가감없이 보여주면 이렇게 코메디 수준밖에 안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동안 우리 국민은 YS를 얼마나 몰랐던가. YS가 내뱉은 말도 안되는 말을 '말'이 되게 바꾸고, 뭔가 내용이 있는 듯이 포장했던 것은 바로 언론이 아니던가. 바로 내 선배들이 아니던가.이병한 인터넷신문 OhMyNews 기자/ 언론노보 292호(2000.10.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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