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서정가제 존폐와 관련한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초 문화관광부에서 입법예고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안)이 여론수렴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계획이다. 이 법안에서는 도서정가제(재판매가격 유지제도)를 의무사항으로 규정, 위반한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500만원의 과태료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이에 대해 온라인서점을 위시하여 정가할인을 시행하는 업체들은 법안이 자유경쟁체제에 역행하는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편으로 대표적인 단행본출판사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는 10월 12일 임시총회를 열어 해당업체들에 대한 직간접적 도서공급을 전면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소매서점들도 향후 이들 업체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에 대해서는 거래를 청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엇갈린 이해관계 속에서 자칫 파국으로 빠져들 소지가 있는 이 입장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977년 이래 정부는 '창의적인 저술의욕의 상실과 그에 따른 질 저하에 대한 우려'와 '명목가격의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도서정가제 유지를 표방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 대해 경제관련 부처의 시각은 자율적인 시장경쟁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해당 부처간의 상이한 접근방식에 따라 도서정가제는 공정거래법 상의 '예외규정'이라는 법률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고 본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안)에서의 벌칙조항 신설로 수면 위로 떠오른 도서정가 의무화에 대한 평가는 결국 책이라는 상품의 특성과 출판현실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공정거래법의 취지가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라면, 책이라는 상품은 이러한 자율기능에 보다 근착한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반환조건부 위탁판매방식으로 유통되는 책은 결국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가치가 실현되며, 판매로 이어지지 않은 책은 결국 출판사로 회수된다. 또한 정가책정과 관련해서 제작원가를 구성하는 몇가지 항목, 예를 들어 인쇄, 용지, 제본 등의 고정비 항목의 비용은 쉽게 확인될 수 있고, 업계내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적정선이 유지되고 있다. 유통구조 상의 개별주체들이 취할 수 있는 수익률 역시 여타 업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박한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다.(단지 싸게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자율성은 아닐 것이다)이러한 현실 전체를 아우르는 개선논의에 선행하여 도서정가제가 폐지될 경우, 현재의 출판시장은 명목가격의 상승을 통해 불합리한 거품현상이 발생할 것이며, 과당경쟁을 통해 그나마 부족한 서점공간의 대폭축소와 출판업계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현재 진행중인 도서정가제 찬반논의가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에 얽힌 경쟁의 논리보다는 출판의 사회적 기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박동흠 창작과비평사 영업국/ 언론노보 292호(2000.10.25)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