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언론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해 오신 동료들이 주시는 상이라 다른 어느 상과도 비견할 수 없는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작년 이맘때 이 프로그램을 방송한 뒤 1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남북관계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평화를 향한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통일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현장을 누빈 기자와 PD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이렇게 큰 상을 받는다는 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늘 깨어 있으라"는 준열한 비판으로 생각하며 이 기쁨을 새로운 출발의 의지로 승화시키겠습니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여수 14연대 반란>편은 분단이 고착화 된 1948년의 상황을 다시 한번 체험해 보려는 시간여행입니다. 그해 8, 9월에 남과 북에 다른 정권이 수립됐지만 누구도 분단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단선단정 반대운동은 무참히 짓밟혔고 고립된 섬 제주도에서는 수많은 양민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해 10월 19일 일어난 여수 14연대의 무장봉기는 제주 파병을 거부해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와 군부 숙청이 다가오기 전에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결국은 조국의 분단을 목숨으로 막아 보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군부 숙청을 완료되고 학도호국단을 창설하고 김구를 제거함으로써 분단 독재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 정권은 이제 전쟁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판단을 굳히게 되는 것이지요.우리 현대사의 중대한 갈림길이 된 이 사건에 대해 저 자신을 포함, 사람들이 너무나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모든 민주주의의 기본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입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기득권세력이 조장하고 강요한 레드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여수, 순천 지역 주민들은 극심한 피해의식 때문에 50년이 넘도록 이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어 왔습니다. 이념의 세기가 지났는데도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일부 세력이 기득권을 편안하게 누리기 위해 그것을 조장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프로그램이 조금이나마 건강한 역사의식을 되살리는 데 보탬이 되고 우리 언론인에게 작으나마 면죄부를 주는 프로그램으로 성공했다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제목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부끄럽습니다. 언제나 한발 늦게 '이제야 말할 수 있다'며 살아 온 우리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그래서 늘 살아 있는 언론을 위해 다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프로그램의 클로징 멘트처럼, 1948년 사건 당시 통일을 염원하다가 숨져간 분들을 우리 민족 모두가 넉넉히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속히 오기 바랍니다.프로그램의 방향을 잡아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김윤영 국장님, 함께 땀흘린 모든 동료 피디들, 대본을 쓰다가 졸도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한 작가 이영숙씨, 저 혼자라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을 귀중한 자료들을 찾아낸 작가 남송희씨, 그리고 연출자인 저보다 더 영상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한 카메라맨 서점용씨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이채훈 PD/ 언론노보 292호(2000.10.25)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