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지금 권위주의체제의 해체와 민주주의적 새 질서, 새 체제 구축의 과업을 안고 있다. 그러나 권력적 속성이 강한 분야일수록 이 민주와의 과제에 거부적일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이런 의미에서 독재권력의 잔영이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는 한국사회의 정치권이 민주화의 행보에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반으로는 수긍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에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민주와에 거부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분야가 언론계라는 사실은 얼핏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면 그 해답은 간단하다. 지금 한국언론은 정치 못지 않은 하나의 '권력기관'이고 그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한국언론의 소유주들은 한사코 '언론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언론사들만큼 봉건주의 체제가 흔들리지 않고 있는 조직이 한국사회 어떤 분야에 또 있는가.이승만 남한단독정권의 확립, 6·25동란이래 뿌리뽑혀진 언론사의 노동조합운동은 60년 4월혁명 직후, 74∼75년 자유언론운동시절 잠깐씩 일어나곤 했지만, 강고한 독재권력들에 의해 그 싹이 대지에 뿌리내리지 못했었다.현재의 언론사노조들이 모두 87년 '6월 항쟁'이후에 생겨났다는 사실은, 역으로 말하자면 70∼80년대 오랜 민중들의 민주화투쟁과정에서 한국언론이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점이기도 하다.왜냐하면 현대화 같은 복잡한 매스커뮤니케이션 구조 속에서 언론사와 언론계를 둘러싼 환경이 전근대적·봉건적 구조를 지닐 경우, 그 어떤 '지사적(志士的)'언론인이라도 그 개인의 힘으로 언론자유를 관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한국 언론계의 현재의 민주화운동은 한국언론계의 노동조합운동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 노조운동은 1990년 초부터 지금까지 약 10년의 짧은 역사 밖에 가지지 못했었다고.그러나 이 10년간의 언론노동조합운동 경험은 앞으로 한국언론의 민주화운동에 그야말로 소중한 경험이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즉 이 10년 간의 언론노조운동으로 하여 한국언론이 안고 있는 법률적, 제도적, 구조적 문제점들은 거의 드러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제는 그 개혁의 힘을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문제만 남아있다.우리는 이 힘 가운데 하나를 국민적 자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언론의 권력 지향성, 한국언론의 국민대중과 시민사회에 대한 배반성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과 불만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또 하나는 언론노동운동의 '산별전환'에서 엿보게 된다. 파편화 된 언론인 개개인이 봉건적 언론기업 속에서 진정한 언론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듯이 현재와 같이 고립 분산된 기업별 언론노조의 힘으로는 강고한 권위주의적 언론 풍토, 천민적 상업주의에 찌든 경영풍토에 대등하게 맞설 수 없다는 경험을 언론인들은 뼈저리게 겪었을 터이고 그 교훈의 종착역이 언론노조운동의 산별노조전환이 아니겠는가.이번 언론노조운동의 산별전환은 그야말로 한국언론의 민주화운동에 있어, 나아가 한국노동운동 전반에 있어 획기적 진전이 될 것이다.그러나 만약 시대적 소망에 대한 자각 없이 덩치만 키우고 힘만 키운다면 무엇하겠는가?언론산별노조는 이 새로운 출발에 있어 지금보다 더 큰 짐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강고한 연대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용하는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코 녹슬지 않는 운동성으로 한국언론의 내일의 짐을 거뜬히 짊어지기를 기대한다.언론산별노조의 출발에 축복이 있기를!성유보(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노보 294호(2000.11.24)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