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연두 기자 회견에서 '언론 개혁'을 언급한 것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언론과 태생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권력의 최고 수장이 언론 개혁을 언급함으로써 개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언론 개혁이 이 시대의 과제이기는 하나 대통령이 언론계, 시민 단체 등을 추동하고 동원하는 듯한 언급을 함으로써 오히려 언론개혁 운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이렇게 대통령이 언론 개혁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은 사안의 민감성과 더불어 권력과 자본 그리고 언론의 미묘한 삼각관계 때문일 것이다. 본래 언론은 알튀세르의 용어를 빌면 이른 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서 '통치 이데올로기'를 생산, 유지하는 권력과 자본의 가장 유효한 장치이다. 즉 언론은 사회, 정치적 현존 체제에 대한 피지배 계급의 복종을 얻어내는 통치 도구인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를 빌면 '비틀거리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부르조아 국가의 능력'을 대표하는 이른바 '헤게모니(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물리적 강제로서가 아니라 자발적 동의에 의해 정당한 행위로 보편화시키는 상황을 나타내는 그람시의 독특한 용어)'의 대표적 도구인 것이다. 즉 이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권력과 자본은 언론을 공유하는 공동 소유자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수 십여 년 간의 언론역사는 이들의 이론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사용자와 도구'의 역사였다. 권력과 자본은 함께 언론을 유린한 공범이었다. 문제는 권력과 자본 양자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이 균열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권교체였다. 수 십 년 간 파시스트적 속성을 지닌 권력과 철저한 연대와 유착 속에 살아온 언론 자본이 새로운 권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끼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그것이 그들 사이의 문제이든 우리 국민 전체의 문제이든 언론노조에 있어서 언론개혁은 여전한 주제이다. 현직 언론인들에게 언론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의 언급이 우리들의 이런 상황을 사라지게 하지도 못하고 더 북돋우지도 못한다. 언론 개혁의 문제는 대통령의 언급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 시대를 사는 언론인들의 업보인 것이다. 언론 개혁은 그래서 언론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언론노보 298호(2001.1.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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