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씨는 94년 김영삼 정부가 세무조사를 하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언론개혁의 선봉에 서서 사정을 추진한 핵심인물이다. 그는 7년이 지난 지금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위위원장을 맡아 언론개혁을 저지하는 사령탑으로 변신했다. 여당 시절 언론개혁을 외치다가 야당이 되자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세월 따라 피아(彼我)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기 모순적이며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박 위원장은 2월9일 김대중 정권의 세무조사·공정거래위조사는 권력을 총동원한 언론 말살책이라고 주장했다. 15일에는 성명을 내면서 한 발 더 나갔다. 요지는 여당이 한겨레신문에 자료를 제공하여 언론족벌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위원장으로 체면도 있고 뭔가 한 건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그렇다고 성명의 여섯 번째 문장에 '강한 의구심'이라고 했다가 여덟 번째 문장에 '비열한 작태'라고 사실처럼 못박는 거짓말을 해서야 될 일인가.그는 신한국당 의원이던 96년7월 '미디어오늘'과의 94년 언론개혁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세무조사 등 언론사정을 추진했으나 언론사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털어놨었다. 이어 "언론을 포함한 기득권 층은 많은 자금, 정보,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노회(老獪)한 사람들로 이들의 저항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며 "국민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비판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덧붙이기를 "우리언론을 개혁대상으로 삼지 않고 처음부터 언론을 등에 업고 시작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의문"(96년 정치학회 세미나)이라 했다. 말하자면 박위원장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끝은 어디인지, 그리고 언론의 깊은 속내까지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 사람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자기가 다 안다. 자기가 자기의 스승이요, 의사다"라고 했다. 우리말에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과 '아는 것이 병이다'는 말이 병존하고 있으니 안다는 것은 그렇게 표리부동한 것인가./ 언론노보 302호(2001.3.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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