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의 파업이 시작된 후 어느덧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5일, 온 산을 물든 붉은 단풍만큼이나 큰 열정을 안고 시작했던 남편의 파업이 어느새 매서운 겨울 산을 넘어 봄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저는 CBS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남편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이번 투쟁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인내와 하나됨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파업이 한 달 이상은 가겠는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밤 프로그램을 연출하느라 거의 새벽에 퇴근을 하던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는 사실에 조금은 행복함을 느끼며 파업의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6개월째 남편은 그토록 그가 사랑하던 방송을 떠나 있어야만 했고 허울좋은 자본가들의 논리인 무노동 무임금으로 인해 우리 가정은 생활고에 허덕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진전도 없어 보이는 6개월 동안의 파업을 바라보면서 파업에 직접 참가하는 남편보다는 밖에서 바라보는 내 자신이 더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이 비단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하지만 6개월 동안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남편이, 아니 200명이 넘는 CBS 노조원들이 왜 그 기나긴 광야 길을 선택했는지 그 뜻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소리, 정의를 외쳤던 CBS를 전 늘 자랑스럽게 여겨 왔습니다. 혹 밖에 나가서 양심적인 방송을 해왔던 CBS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제 어깨가 얼마나 으쓱해졌는지 아마 이 기분은 우리 CBS 가족 모두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남편들이 물러선다면 이제 다시는 그런 정의를 외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BS 내부의 정의와 민주주의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가서 올바른 소리를 낸들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또한 CBS의 파업은 권력욕과 명예욕으로 물들어 가는 한국 기독교 지도층에 새로운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주지시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을 불태워야 하고 녹여내야 하는 지를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남편의 파업은 비록 힘든 고난의 길이지만 그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번 CBS 파업이 흔들리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남편들을 믿어주었던 저를 비롯한 많은 아내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힘들고 외로운 길이지만 남편을 믿어주면서 묵묵히 기도하고 지켜주는 우리 아내들이 있는 한 남편들은 더욱 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3월말임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쏟아지던 흰눈도 다가오는 봄을 거역할 순 없었듯이 CBS에 찾아오고 있는 희망과 정의, 봄 또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듯이 CBS 노조가 꼭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여보 파이팅 !! CBS 노조 파이팅 !! / 언론노보 303호(2001.4.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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