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의 핵심은 내·외부로부터 편집, 편성권의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담보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은 그동안 가장 강력한 세력인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때로는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투쟁해왔다. 잦은 좌절과 부분 성공으로 점철된 韓國言論史의 편집, 편성권 독립을 위한 투쟁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언론사의 편집권 독립은 왜 필요한가. 일반기업에는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권이외에 편집권이라는 것이 없다. 경영권이 영업이익을 위한 사주 혹은 경영자의 사적권한이라면 편집권은 공익을 위한 언론인들의 고유권한이다. 따라서 편집권은 어떤 경영논리보다 공익성과 공공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 오늘날 언론사의 편집권 독립이 논란의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소유형태는 사기업이면서 경영은 공기업성격이 강한 이중성 때문이다. 언론사에서 경영의 논리가 우위에 설 때 국민의 정당한 알권리는 상업주의에 훼손되고 왜곡됐다. 편집권 독립이 없는 곳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역할은 없다. 결국 잘못된 여론이 득세하게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여론정치는 사라지게 된다.국내 언론사들은 전통적으로 군사정권, 권위주의 정권 등으로부터 편집권훼손을 당했다. 이 문제는 5공화국 언론기본법이 폐기되면서 해결됐다. 1988년 제6공화국을 기점으로 새로운 신문과 방송이 등장하면서 권력의 직접적 통제는 사라졌다. 권력의 보호아래 30여년 지속해온 언론카르텔도 붕괴되면서 자유경쟁체제가 형성됐다. 언론계 경쟁이 심화된 90년대 한국 언론의 편집권은 이제 권력이 아닌 상업주의에 지배당했다. 1등 신문이 되기 위해서 혹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신문과 방송시장은 국민의 알권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 경영논리의 무대가 됐다. 불공정 거래로 얼룩진 신문판매시장에서는 살인극이 빚어졌다. 편집국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주의 빗나간 승부수가 대통령 선거보도를 망쳤다.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그릇된 경영논리가 편집권을 압도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해당사주는 구속되는 해프닝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 1960년 군사정권 때 '편집권이 언론인 손을 떠났다'는 탄식이 40여년 후 2000년대도 되풀이 되고 있다. 다만 언론인 손을 떠난 편집권이 권력의 손에서 언론사주(자본)의 손으로 옮겼다는 변화뿐이다.편집권 독립의 첫단계로 1인 소유한도를 신문사 주식 30%내외로 제한하여 소유권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해당 언론사 사주들은 사기업에 대해 소유를 제한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이며 이는 위헌이라고 맞서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족벌경영을 하지만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족벌경영형태가 존재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물론이고 편집권의 독립이 유지되고 있다. 언론사 소유권 제한은 공익적 차원에서 가능하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는 제작비 보조 등의 직접지원과 차등적 세금부과 등의 간접지원으로 2단계 언론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 신문이 전국적으로 전체시장의 30%이상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같은 자본주의 신봉사회에서 왜 민간회사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제한하는가. 그것은 바로 언론이 갖는 공공성과 공익성 때문이다.그 다음, 편집권 독립을 위한 '편집위원회와 편집권 독립 규약'부터 만들어야 한다. 방송은 '편성규약'을 제정해야 한다. 중앙일보는 지난2월14일 소유와 경영의 분리차원에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MBC는 지난 4월 4일 공정방송협의회에서 김중배 신임사장이 편성규약을 제정하기로 노사합의를 했다고 한다. 또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 이는 정간법 개정으로 가능하다.현행 정간법에 의하면 언론사 경영상태를 알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을 강제하는 법적 장치를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매년 3월 600여개 일간지 및 정기간행물을 대상으로 발행부수, 인건비, 판매수익, 광고수익, 세금을 제외한 경제수지 등 6개항에 대해 조사, 공표한다.마지막으로 편파, 왜곡 보도를 막고 공정한 보도를 수호할 내부 자율규제장치가 절실하다. 과거 언론노동조합 내에 공정보도위원회가 미약하나마 이런 역할을 했으나 IMF구제금융체제이후 그 마저도 사라진 형편이다. 방송사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편성했다고 하지만 옴부즈맨도 없는 실정이다. 자율규제장치가 없거나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타율규제는 불가피해진다. 국세청과 불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고 사라졌던 신문고시가 부활되는 이런 상황은 언론사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언론외부의 언론개혁요구와는 대조적으로 언론내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제 언론인들 스스로 나서라./ 언론노보 304호(2001.4.18)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