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 '친구'단순 깡패영화 아니라옛 향수 일으키는필름 느와르"도무지 희망없는사회현실 대변관객 열광이유 아닐까"영화 '친구' 열풍이 거세다. 개봉된 지 4주만에 5백만명이 관람, '공동경비구역JSA'와 '쉬리'의 기록을 최단기간에 경신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두 영화인 단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동경비구역JSA'는 5백80만여명, '쉬리'는 6백20만여명이 관람했다. '친구' 투자·배급사인 코리아픽쳐스는 5월말 기준으로 7백만명 관람을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관객들의 열기와 달리 최근 대종상영화제에서 '친구'는 21개 가운데 하나의 상도 받지 못했다. 심사위원단은 '친구'를 오락용 '깡패영화'로 규정, 한 부문상도 주지 않았다. 최우수작품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린 것 또한 그들이어서 두 가지 잣대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수많은 관객들이 단순한 깡패영화에 열광하는 것이냐는 의문도 남긴다. '친구'는 어떤 영화인가. 관객들은 왜 '친구'에 환호하는가?준석(유오성) 동수(장동건) 상택(서태화) 중호(정운택). 이들은 죽마고우다. 고교 재학중 이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준석과 동수는 특히 적대적 관계인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으로 맞서게 된다.'친구'는 깡패가 주인공이기는 하다. 그러나 '초록물고기' '넘버3' 등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이 깡패라고 작품마다 시시껄렁한 깡패영화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부' 역시 깡패가 주인공이지만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갱스터 무비'(Gangster Movie)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마찬가지로 '친구'는 그저그런 깡패영화가 아니라 70∼80년대를 배경으로 현재를 조명한 필름 느와르(Film Noir)로 봐야 한다. 실화를, 감독(곽경택)의 체험담을 영상화했다. 이야기는 상택의 내레이션에 따라 전개된다. 네 남자의 우정과 비극적 종말이 중심을 이룬다. 상택은 극중인물이자 화자(話者)로서 감독의 시선이기도 하다.건달의 이야기인 만큼 거친 액션이 상당 부분을 장식한다. 학생들 간의 패싸움,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교사의 거침없는 욕설과 폭력, 폭력 조직 사이의 끊이지 않는 보복은 영화의 일차적인 재미를 자아낸다.폭력 장면은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중·후반부 두 조직 사이에 주고받는 섬뜩한 칼부림은 초·중반부에서 개구쟁이들이 조오련과 물개의 빠르기를 비교하며 물장구치던 시절과 상극을 이룬다. 친구에 얽힌 웃음과 눈물, 우정을 등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에 따른 아픔을 보여준다. '개안타, 친구 아이가' 등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낱말이 바로 친구. 그러나 그 의미는 제각각이다. 상택이 준석을 면회하기 전에 신청용지 관계란에 '친구'라고 또박또박 쓰는 장면, 상택과 준석이 있는 힘을 다해 면회실 유리창에 손바닥을 맞추는 장면 등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게 해준다. '친구'가 건달들의 의리와 배신을 다룬 단순 깡패영화가 아닌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역시 이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관객 저마다의 가슴에 자리해 있는 친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극중 인물이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자신의 경우와 처지를 읽는 것이다. 나아가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엿볼 수 없는 요즘 정치·경제·사회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친구' 열기에 대한 이같은 갖가지 요인 분석은 비록 결과론에 따른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친구'의 힘이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친구'로 3년에 걸쳐 잇따라 할리우드 영화를 누른 한국영화의 저력이 놀랍다. 배장수(경향신문 생활문화부 차장)/ 언론노보 305호(2001.5.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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