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시리즈 - 7. 언론개혁 당위성최근 우리 사회 안에서 대형 신문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 개혁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리고 수많은 시민운동 단체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이 연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이 개혁론은 언론의 본질인 공적 기능의 실천적 회복을 위한 신문 구조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개혁의 우선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물론, 일부 보수적인 교수 및 지식인들과 한나라당까지 합세하여 신문 개혁 요구를 언론 탄압으로 몰아 가고 있다. 언론의 개혁은 언론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전개해야할 것이지 언론 밖의 집단들이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언론자유의 침해라는 것이다.신문은 아직도 우리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중심 매체이다. 따라서 신문의 구조나 기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뿐더러, 여러 가지 요건들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 일고 있는 언론 개혁 요구에 대한 반대 의견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무지와 편견의 소치로밖에 볼 수 없는 저급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먼저 신문 개혁 반대론자들은 개혁이라는 어휘에 대해 거의 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들의 논지대로라면 개혁은 곧 탄압과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신문 개혁은 언론의 파탄을 불러오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가 다양한 개혁의 과정을 통해 오늘의 민주적 체제를 이루었음을 상기해야한다. 사회를 올바르게 지탱하고 개선해 온 생명력이 개혁에서 나왔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 개혁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은 신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을 위해 만들어낸 신문이라는 매체의 존재 방식을 더 나은 삶을 위해 바꾸자는데 이를 두고 탄압이니 통제니 하는 것은 어린아이도 웃을 일이다. 더구나 매체 문화를 비롯한 제반 사회 문화 이론이 이미 엘리트 중심의 단선적이고 고정적인 지배론을 청산하고, 그 구성의 역사성과 시대적 조건성을 전체적으로 고려한 다원론으로 옮겨간 지 오래인데도, 우리가 유독 전자의 경직된 문화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사적 이익을 위한 독선이다.다음으로 언론 개혁의 주체와 방식에 대한 논란도 아전인수격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신문 개혁 반대론자들은 신문 개혁은 언론자유 정신에 입각한 신문사들의 자율적인 권한이기 때문에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물론 언론의 문제는 언론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언론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할 능력을 잃었을 때 사회가 간여하고 나서는 것은 언론의 자유 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는 개인으로부터 사회운동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행사될 수 있다. 신문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공적 기능을 다한다는 것을 전제로 신문에 위임된 국민의 자유이지 매체의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가 나치 협력 언론인들을 처벌하고, 미국이 1940년대를 전후해 언론의 상업적 선정성을 문제삼아 대대적인 사회적 논의를 폈던 것을 누가 언론 탄압이라고 한다면 그는 정신 나간 사람이다.그리고, 신문의 불법적인 경제행위 여부에 대한 정부 해당 기관의 조사나 그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언론 탄압이라고 우기는 개혁 반대론자들의 태도도 문제다. 신문에 대해 정부가 조사를 하면 무조건 탄압이라는 말인지, 신문이 법을 어긴 사실이 인지되어도 조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도둑을 잡기 위한 경찰의 적법한 수사 행위를 도둑을 탄압한다고 말해도 되는가? 법을 부인하기를 밥먹듯이 한다고 비난받는 일부 국회의원들이면 모를까 누가 이를 두고 도둑을 탄압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언론 장악 커넥션으로 지탄을 받았던 한나라당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대한 정치적 언론 탄압론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아스럽다.지금 문제가 되어있는 신문 개혁은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의 구체적 실천 방안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독재체제의 유산인 제도언론을 혁파하는 것만이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하에 신문 개혁 작업이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인 시도를 누구든 파당적이고 돌출적인 행위로만 축소하고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문들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투의 아집을 버리고, 오히려 사회의 언론 개혁 논의에 동참하여 새 시대에 맞는 신문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할 것이다. 신문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거나 '문화주의를 제창한다'는 식의 전 시대적 언론 개념과 전문성은 관계없이 가업이 되어버린 신문 경영 구조로 이 첨예한 변화와 각축의 시대를 관통할 수 있을 것인지 개혁적 차원에서 진지한 검토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송정민 전남대학교 신방과 교수/ 언론노보 305호(2001.5.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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