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 8박용규(상지대 교수, 언론정보학) 신문고시 제정에 대해 한 쪽에서는 무질서한 신문시장을 바로잡고 공정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다른 한 쪽에서는 특정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저의가 담겨 있으며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논란 끝에 결국 4월 13일에 부활이 확정된 신문고시는 공정위가 처음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했던 안보다는 상당히 완화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신문고시 제정이 확정되자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라는 입장과 어쨌든 특정 신문을 탄압하는데 이용될 것이라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났다. 이 번에 부활된 신문고시는 비록 초안에 비해 상당히 후퇴한 것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신문고시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도 적지 않다. 즉 과거의 신문고시가 무가지, 강제투입, 경품 등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 부활된 신문고시는 신문 판매 전반은 물론 광고와 관련된 불공정거래행위까지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정된 신문고시는 신문사와 지국사이의 불평등한 관계,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 광고시장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등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담음으로써 신문시장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신문고시가 제정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문시장이 무질서했던 데는 역사적 요인이 작용했다. 한국 신문은 1962년 군사정권 하에서 카르텔체제가 구축된 이후 오랫동안 자유롭고도 공정한 경쟁행위를 하지 못했다. 따라서 1987년 이후 신문들이 창·복간되면서 비정상적 과열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자본력이 앞서는 일부 신문들의 주도하에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른바 '신문전쟁'이 벌어졌고, 급기야는 1996년에 판매를 둘러싼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신문들의 과열경쟁 과정에서 무가지와 경품이 마구 뿌려졌고, 구독강요와 강제투입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자본력이 앞서는 일부 신문들이 이런 물량공세나 구독강요를 통해 약탈적인 시장확대를 해나가면서 과당경쟁에 따른 온갖 폐단들이 드러났고, 여론형성과정의 왜곡까지 나타나게 됐다. 또한 무리한 부수 부풀리기로 인해 합리적인 광고료 산출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광고 강요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과열경쟁은 독자나 광고주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신문들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일부 신문들의 판매나 광고에서 나타나는 각종 불공정거래행위들은 독자나 광고주들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고 심리적 부담을 안기기도 했다. 또한 자본력을 앞세운 일부 신문들의 약탈적 시장확대 행위는 다수 신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도 저해했다. 이렇듯 현재의 비정상적 신문시장질서는 각종 불공정거래행위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키워 온 일부 신문들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 대다수의 신문, 독자, 광고주들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문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일부 신문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율규제를 통해 신문시장이 정상화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자율규제가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잘 드러났다. 또한 신문고시 제정이 반드시 타율규제를 위한 수단이라고만 보아서도 안 된다. 신문고시 제정이 관련 법규에 근거해 신문시장에서 나타나는 각종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과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운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법 위반 행위가 자제되도록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고시를 잘 운용할 경우 그만큼 자율규제의 정착도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신문협회가 신문고시를 준용해 자율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통해 신문시장의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한다면 자율규제의 실효성도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고시 부활이 단지 신문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출발점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더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정과정에서 나타난 집요한 반대 움직임을 떠올리면 시행과정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공정위가 정치적 요인에 영향받지 않고 얼마나 원칙을 지켜나가는가가 신문고시의 성패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우선 신문고시 제정 이후 다시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후속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편 신문업계는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실효성 있는 자율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준수해 자율규제의 풍토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만약 앞으로 계속 신문업계가 자율규약을 통한 자율규제를 충실히 하지 않고, 공정위가 이를 감시해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부 신문들은 기득권에 너무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정부는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신문고시 제정이 대부분의 신문, 독자, 광고주들을 위한 공정경쟁의 틀이 만들어지고 신문시장이 정상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노보 306호(2001.5.16)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