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재미는 '엇갈림'에 달려 있다. 관객의 상상력을 발동케 하는 애매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결말은 웃든지, 울든지 둘 가운데 하나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사실 주인공 사이에 시간·장소·신분·마음 등 어느 하나라도 엇갈려 있지 않으면 드라마를 꾸미는 게 쉽지 않다. 꾸며지더라도 재미가 없게 마련이다. 한 동네에서 사는 철수와 영희는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는데 마음의 갈등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 영화 제작이 가능하기는 할까. 우리영화 화제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제작 사이더스)와 '번지점프를 하다'(김대승·눈)가 최근 비디오로 나왔다. 두 작품은 사랑을 그린 영화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상당히 대조적이다. 특히 엇갈림을 만들고 풀어나간 기법이 '나도…'는 단순 명료하면서 세밀하고, '번지점프를…'은 상대적으로 매우 복잡하면서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다양성을 비교, 음미해 볼만하다. '나도…'는 노총각 은행원(설경구)과 보습학원 강사(전도연)의 사랑을 그렸다. 두 남녀는 직장이 바로 붙어 있어 매일 마주치다시피 한다. 이렇듯 '나도…'에는 시간과 공간, 신분 등의 엇갈림이 없다.엇갈림은 단지 마음의 방향이 다른 데에 있다. 강사는 은행원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 '나도…'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춰 두 남녀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묘사했다. 영화마다 있게 마련인 위기나 반전, 운명의 꼬임 등 극적인 장치가 전무한 편이다. 평범한 두 남녀의 일상과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촘촘하게 모자이크했다. 누구나 공감할 만큼 일상의 묘사는 빼어나지만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이 반복돼 다소 지루한 편이다. '번지점프를…'은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엮었다. 영화는 20년의 시공간을 두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1980년대 한 대학 한 학번인 두 남녀(이병헌·이은주)의 사랑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2000년대 두 남자(이병헌·임현빈)의 사랑 이야기이다.전반부 사랑 이야기는 '나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 80년대 풋풋한 젊음의 서툰 러브스토리를 유머러스하게, 그림 같은 영상에 담아냈다. 이에 반해 후반부는 총체적 엇갈림의 잇단 충돌로 채워져 있다. 그 엇갈림의 초점은 가히 파격적이다. 교사와 학생, 그것도 남자 교사와 남학생이다. 동성애자가 아니다. 남학생에게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교사 역시 결혼한 몸이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다. 교사는 문제의 남학생은 물론 학교와 가정에서 배척 당한다. 그럼에도 교사는 그 남학생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남학생은 20년 전 그가 입대하는 날 전송을 나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여학생이 환생한 인물인 것이다. 남학생은 자신의 소유품· 관심·대사 등을 통해 교사의 진심을 확인, 뉴질랜드로 떠나 함께 구명줄 없이 번지점프를 한다. 영화의 성패는 엇갈림을 어떤 기법으로 얼마나 흥미롭게 엮고 풀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을 바라는 관객의 욕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나도…'와 '번지점프를…'의 경우 '번지점프를…'이 평단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더욱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번지점프를…'은 올해 말 많았던 대종상영화제에서 이론의 여지없이 각본상을 받았다.배장수 경향신문 생활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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