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시리즈 9 : 언발위 구성과 과제언론발전위원회 설치 결의안이 2000년 7월 31명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아직 운영위원회에 묶여 있으면서 시민단체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1999년 6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언론발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촉구한 이래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화답으로 그 성과가 있는 가 싶었더니 염려했던 대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아직도 후속논의가 중단된 채 계류중이이다. 언론발전위원회 구상은 한국언론이 다양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그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탐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찾아내자는 시민의 여망을 담고 있다. 시민단체가 제안한 언론발전위원회는 미국의 허친스(Hutchins)위원회나 영국의 캘커트(Calcutt)위원회 같은 기구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이 기구들은 각기 해당국가의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문제의 해결책과 아울러 중장기적인 미래상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들은 언론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정리하고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거국적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한 뒤에 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을 벌여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했다. 언론발전위원회도 한국언론이 안고 있는 지나친 선정성, 부도덕성, 무책임성, 과잉권력화, 사이비언론, 오보.왜곡.과장.편파.불공정보도, 무방향성, 신문시장의 무질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구상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 구성하자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언론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 줄기와 가지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 보자는 것이며, 간헐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논의되고 대립되는 문제를 제도와 공개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개혁일 수도, 정상화일 수도, 발전일 수도 있다. 언론발전위원회는 그 자체가 언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통파의 접근방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기간행물법 등 언론관계법과 제도를 개정하기 위한 우회로이기도 하다. 그 목적지야 어떻든 언론발전위원회는 언론문제에 관한 포괄적 논의를 통해서 언론의 바람직한 질서 형성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정기간행물법 중 당장 개정 가능한 것들은 개정을 하고,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조정이 어려운 문제들은 언론발전위원회에서 시간을 가지고 논의를 거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람직한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발전위원회를 어디에 둘까의 문제도 그 활동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성숙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이나 정부 산하에 위원회를 두면 권력의 힘이 부당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고, 정부로서도 불필요한 언론장악 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시민단체가 위원회의 중심구성체가 되면 전국민적 힘을 갖기도 어렵고, 합의를 이루어내기도 어렵다.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치세력들이 경합하는 국회에 둠으로써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활동과정과 토론과정이 전국민에게 공개되고 그에 따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언론발전위원회의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첫째, 한국언론의 기본철학을 설정하는 일이다. 한국 언론은 불행하게도 그 존재의의나 기본적 지향에 관한 철학없이 권력과 자본이 사사롭게 지배하는 무질서의 판 위에서 존립해 왔다. 철학이 없는 언론은 끊임없이 자체의 권력화와 상업적 이윤추구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상업적이든, 정치적이든, 이윤추구적이든, 공익적이든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고 솔직하게 규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투명하게 나아가야 할 터인데 우리 언론은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원칙도 없이 상황논리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언론의 기본철학은 언론영역에 질서를 구축해 주고, 언론의 방향을 설정해 준다. 그 기본방향은 언론이 다양한 의견과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적 공론장 구실을 하도록 하는 것, 공정경쟁의 환경 조성, 시장논리가 우세한 상황에서 언론사 운영의 사회적 공익성 훼손의 위험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 언론사 소유·경영의 투명화와 합리화, 시민주권의 확립 등으로 설정될 수 있다. 둘째, 올바른 언론매체가 존립하도록 하기 위하여 언론관련 법과 제도와 정책의 방향을 설정한다. 정기간행물법을 포함한 신문관련법률과 제도의 개선방안 마련,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 시장관련법규 정비를 통한 시장 정상화, 언론피해 구제제도의 효율화방안, 신문산업 발전방향의 제시, 소규모 언론과 지방언론의 존립근거와 역할에 대한 분석과 그 구체적 존립방안 구상, 영세한 언론사를 위한 지원기구 및 모델 개발, 언론사의 경영투명성 및 소유에 관련된 법규 및 정책 등을 분석하여 합리적 대안을 창출한다. 셋째, 시민의 신뢰 속에 신문이 활동할 수 있도록 언론인들의 지향점과 윤리, 공정보도, 그리고 편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인들의 노동조건과 저널리즘 질 연구, 언론인 전문성 및 윤리성 강화방안, 정기간행물법에 편집규약의 제정을 법제화하고, 그 골격까지를 제시함으로써 그 실현가능성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언론발전위원회 설치안에 대한 거대신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마디로 '이대로가 좋다'이다. 어떠한 변화도 바라지 않는 현상유지적이고 수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 신문계의 문제가 크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그것이 혹시 자기들이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기존 신문시장의 질서에 손상을 가져올까 염려된 탓일게다. 언론발전위원회가 구성되고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당들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극히 중요한 언론현상에 대하여 무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정치부문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언론무정책은 사실 그동안 권언유착으로 상징되는 언론과 권력의 부정한 타협과 음모의 산물이다. 언론발전위원회는 언론통제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언론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는 자리다. 언론시장의 질서를 구축하고 정상적 언론활동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영역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사회적 과제다. 정당들은 파당적 이익에 대한 고려를 초월하여 대국적 견지에서 바람직한 언론상을 마련하는 일에 떨쳐 나서야 할 일이다./ 언론노보 307호(2001.5.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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