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외국상관의 늙은 종들이/ 광목과 통조림의 밀매를 의논하는/ 폐 왕국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위에 국기를 날릴 필요가 없다/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신성이/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임화의 시 '깃발을 내리자'는 해방이후 권력과 자본과 언론의 유착을 비판하고 있다. 친일세력과 앞잡이를 규탄하는 시어가 간결하면서도 서릿발처럼 매섭다. 권력의 살인과 자본의 약탈이 주야로 방송되는 더러운 하늘에서 깃발을 내리자는 주장에는 카프의 이념이 배어있다. 반세기가 흐른 오늘의 하늘은 청명한가. 유착을 넘어 언론이 권력에 이르는 현실을 임화는 어떻게 노래할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신문개혁의 기치를 걸고 6월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신문노동자의 단일대오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미 신문개혁은 시대적 과제로 책임 지워져 있었으며 내부의 침묵에 대해 외부의 질타가 적지 않았던 것을 돌아보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투쟁은 우리의 부끄러움과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지난 24일 중앙집행위 결의 때 많았던 것은 그 까닭이다. 아무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권력화하고 그 족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며, 우리사회의 성역으로 그 울타리를 더욱 높이 쌓아올리며,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민중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신문의 현실이다. 언론노조의 총력투쟁은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거대한 조직적 동력을 가동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 국민적 의지를 모아 '신문개혁국민행동'이 출범한지 2개월, 이제 실천적 행동은 내부에서 터져 나와 들불처럼 번져나가야 할 때다. 마침 언론산별의 통일된 깃발이 전국 50여개 조직으로 배분되니, 동지여! 일제히 깃발을 올리자. 임화가 남부조선의 더러운 하늘에서 끌어내린 광목의 깃발을 다시 들고, 동지여! 일제히 투쟁의 깃발을 올리자./ 언론노보 307호(2001.5.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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