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투쟁의 한길로한국일보사에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요즘처럼 동료들이 자랑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1차, 2차 시한부 파업에 이어 3차 무기한 총파업을 결정하면서 과연 조합원들이 얼마나 동참할 수 있을지 내심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회사는 1차 파업이후 20여일이 지나면서 20일 성남공장 조합원에 대한 경고장 발송, 공고문 부착에 급기야 22일에는 중앙일간지 사상 초유의 직장폐쇄를 전격 단행했습니다. 저는 22일, 23일, 24일 매일 집회장에서 조합원들의 눈빛만 응시했습니다.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합원은 없는지.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동지들은 쟁의행위 돌입이후 20일이 지났는데도 투쟁대오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철의 단결을 보여 줬습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회사에는 장씨 성(姓)을 가진 수십명의 주주가 있는데도 누구하나 회사경영을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고도 주주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부채상환을 위해 뛰어 다니느라 발이 불어 틀 정도'라고 늘어놓습니다. 지난 6월에는 500억원이 없어 부도가 날 판이었고 몇일 전에는 또 수십억원이 없어 파국을 맞을 뻔 했다는 소리만 할뿐 가져간 가지급금 규모와 환원계획조차 밝히길 꺼립니다. 지난달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출근도 하지않은 주주 일가 중 한 명을 서류로만 입사시킨 뒤 수년동안 해외유학경비를 지원해왔고 주주 일가의 해외나들이 경비도 회사돈으로 가져다 썼다고 합니다. 이러고도 국가권력과 거대기업의 부정부패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들은 다 압니다. 장씨 일가만 모릅니다. 지금 한국일보에 필요한 건 유능한 CEO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포함, 구성원 전체의 합리적인 의견을 수용할 줄 하는 이성과 상식을 가진 정직한 경영진일 뿐입니다.주주 여러분, 노동조합은 회사를 깨자고 쟁의행위를 벌이는게 아닙니다. 임금 몇 푼 더 받자고 파업하는 건 더욱 아닙니다. 평생 직장이라고 들어와 수십년씩 청춘을 바친 한국일보가 앉아서 망해가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나섰습니다.사내 전 구성원 여러분, 더 늦기 전에 한국일보 회생을 위한 대책마련에 나섭시다./ 언론노보 309호(2001. 7. 25)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