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풍경과 목어와 목탁,왜 절의 상징물에는 물고기가 등장하는 걸까""수덕사의 맞배지붕, 선암사의 홍예교, 내소사의 꽃살문은왜 아름다운가"지난해 휴가 때 다녀온 충남 예산의 수덕사. 그리고 올 휴가 때 잠깐 들렀던 경북 영주의 부석사. 매년 한차례라도 이런 명찰(名札)을 다녀올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그 많은 사찰 중에서 수덕사와 부석사를 더 좋아하는 건 수덕사에 대웅전이 있고, 부석사에 무량수전이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과 무량수전은 담백하다. 그 꾸밈없음, 간결명료한 상쾌함이 좋다. 거기 세간의 풍진(風塵)이 끼어들 틈은 없다.난 치장이 화려한 사찰이나 지나치게 건물이 많이 들어서 번잡해보이는 사찰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사치한 것 같고 정신의 투명함이 사라진 것 같다.물론 명찰이 어디 수덕사 부석사 뿐이랴. 다만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낸 것이니.이번 휴가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을 것이다. 더러는 편안한 여행을 위해, 더러는 힘든 선(禪)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그들에게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를 권하고 싶다.사찰엔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가득하다. 다양한 장식 문양과 조형물로 눈이 부시다. 그러나 장식물 조형물들은 익숙한 듯 하지만 막상 제대로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사찰을 찾아도 그저 쓱 한번 둘러보곤 '나 여기 왔다 간다'는 사실에 만족해 버리기 일쑤다. 이 책이 그 아쉬움을 풀어줄 것이다. 저자는 사찰 곳곳으로 눈길을 주면서 장식문양과 조형물들의 존재 이유와 의미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천장의 모서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조개와 물고기, 닫집 속에 감춰진 기운찬 용의 모습, 그리고 탑을 받치고 있는 사자들의 다양한 입 모양 등을 비롯해 연꽃 용 귀면 비천상 물고기 심우도 단청 천장의꽃 문살 광배 부도 등을 망라한다. 사찰 장식의 상징물엔 왜 물고기가 등장할까. 불전의 천장과 문살 또는 기둥과 벽에 장식되어 있는 물고기, 그리고 풍경(風磬)의 물고기와 목어 목탁(목탁은 물고기 모양을 기본으로 한다)의 물고기. 이 물고기는 과연 무얼 상징하고 있을까.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생활한다.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서 부지런히 도를 닦고 정진하라는 뜻이다. 저자의 설명을 잘 들어 보면 그 화려하고 신비한 장식물 조형물들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중생과 사물이 그러하듯 말이다. 대웅전 기둥 밑 돌 하나도, 처마 밑 그림 하나도 모두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상징으로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여름, 이 책은 이렇게 권하는 것 같다. 수덕사에 가는 사람은 대웅전 맞배지붕 그 단순함에 깃든 간결한 당당함의 미학을 느껴보라고, 부석사에 가는 사람은 직선의 목재가 빚어낸 무량수전 곡선의 미학을 느껴보라고, 전남 순천 선암사에 가는 사람은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를 건너보라고, 전북 부안 내소사에 가는 사람은 세월의 흐름 속에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대웅전 꽃살문에 흠뻑 취해보라고. 그리고 경북 경주에 가면 국립경주박물관 경내의 성덕대왕신종 비천상에서 울려나오는 부처의 소리, 화엄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귀 기울여 보라. 이렇게 들려오지 않는가. '세상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인간이여 몸을 낮춰라….'이광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언론노보 310호(2001.8.1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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