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서 언론이 정치권력과 이상적인 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견제와 균형이다. 언론은 정치세력의 권력남용을 감시함으로써 견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력은 권력기반을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려고 부단히 기도한다. 정치권력이 통제와 회유를 번갈아 구사하면서 언론을 조정 또는 설득하려는 것은 그 까닭이다. 여기서 권언유착이 생성되면 언론은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해 버려고 그 대가로 반대급부를 향유하게 된다.정치집단은 국가권력을 쟁취하는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어떤 정치권력도 여론을 조작-통제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부인한다면 그것은 정치집단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초기에 언론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우호적 여론조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족벌신문과 유화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같다. 시민사회에서 주창한 언론개혁에는 귀를 기우리지 않고 자율개혁을 되뇌였던 속사정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김대중 정부는 또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언론매체들이 정권의 임무를 수행해 주길 기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권홍보의 대변자를 말이다. 사장선임 과정과 노조와의 마찰에서 그 의도성이 드러난다. 또 대한매일, 연합뉴스의 소유구조 개편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언론개혁의 의지가 박약하다는 사실도 확인해 준다. 그런데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심각성이 있다. 결국 이같은 언론정책의 판단오류가 족벌신문에게 언론개혁에 저항하는 빌미를 주고 만 것이다. 김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를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찰현상은 필연적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정치적 부담이 크지만 그것을 감내해 왔다. 그러면서도 공공부문 민영화에서 모순된 자세를 보여왔다. 대한매일의 최대주주는 정부로서 49.98%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간접지분까지 포함하면 대한매일은 정부소유의 국영신문사이다. 김 정부가 공공부문의 개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대한매일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무반응-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는 점이다.대한매일이 정부로부터 독립을 추진한다면 연합뉴스는 국가기간 통신사로서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한 소유구조 개편이 핵심사항이다. 40개 언론사가 주주로서 참여하는 주식회사이지만 정치현실과 관련하여 어느 누구도 주주권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왜곡된 소유구조의 개편안으로 공익재단의 설립이 제시되고 있다. 또 편집권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서 사장 추천권의 중립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김 정부는 연합뉴스의 공익성-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한 개편방안에 선뜻 호응하지 않는 듯하다. 정보의 유통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다시 말해 공공문제의 일차적 정보원인 뉴스매체를 통제하는 자는 그 사회와 국가를 통제하는 힘을 갖는다. 정치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도 그 까닭이다. 실제군사정권이 32년간 장기집권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도 언론통제를 통해서 가능했다. 그래서 김 정부도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정부소유 언론사의 소유구조 개편을 뒷전에 두지 않았나 짐작된다.그렇다면 언론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고 거기서 연유한 착시현상에서 그같이 판단오류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다매체-다채널 시대에서는 어떤 정치권력-경제권력도 정보의 유통을 장악하지 못한다. 정부매체를 동원하여 가공의 지지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양방향 매체시대에서 정치권력이 개입하여 정보의 유통을 장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대한매일의 서울신문 시절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뉴스수용가들이 보도내용을 액면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어떤 정치적 의도에 따라 기사가치를 왜곡-변질시켰을 것으로 의심했다. 신뢰의 위기는 결국 정권의 나팔수로서 효용가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김 정부는 언론개혁에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소유매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결국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있는 것같은 오해를 사게 된 것이다.김대중 대통령은 연두기자 회견에서 언론개혁을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거기에는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없었다. 그런데도 언론계 일각에서는 소유분산을 통한 신문개혁을 주창해 온 시민단체와 결탁한 것처럼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그러더니 세무조사가 착수되고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탄압이라고 공격을 노골화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민간부문에는 소유분산을 당부하면서 정부소유는 고수하려는 것처럼 비친 것이 현실이다.이제 언론개혁은 시대적 과제로 설정됐다. 그 작업의 시발점은 정부매체의 소유구조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소유매체부터 개혁해야 신문개혁도 방송개혁도 말할 자격이 있다. 김영호(시사평론가)/ 언론노보 310호(2001.8.15)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