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故 이힘찬 프로듀서 사망 사건에 대한 유가족과 대책위의 입장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 할 설명절 연휴에 한 젊은 방송노동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이힘찬’, 올해 만 서른네살로 10년간 방송사에 청춘을 바쳤다. 지난 2012년 4월 SBS 제작팀에 입사한 고인은 재무팀을 거쳐 2017년 드라마운영팀으로 전보해 프로듀서로 직무를 변경하고 2020년 드라마본부 분사 후에도 스튜디오S를 전적해 프로듀싱 업무를 맡는 등 의욕적으로 일해왔다. 고인은 2018년 ‘사의찬미’, 2019년 ‘초면에 사랑합니다’, 2020년 ‘아무도 모른다’를 성공적으로 프로듀싱해 프로듀서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들과 동료들은 고 이힘찬을 “자신감 넘치고 준비성이 철저하며, 업무에 강한 책임감을 갖는 동료”라고 입 모아 기억한다.


 그런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에 가족과 동료들은 황망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열정 넘치던 서른네살의 방송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우리는 묻고 또 묻는 중이다. 유가족과 대책위에 참여한 단체들은 동료들의 증언, 업무 자료 등을 토대로 고인의 사망에 업무로 인한 압박 등 업무 관련성이 있음을 파악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유가족과 대책위의 추정일 수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조사’가 무엇보다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사측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故 이한빛PD와 이재학PD 사망사건 조사 과정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SBS사측과 스튜디오S 사측은 유가족의 뜻을 담아 노동조합이 요청한 ‘노사공동조사위원회’를 거부했다. SBS사측은 별도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했고, 스튜디오S 사측은 진행된 적 없는 “유가족과의 성실한 조사 협조”를 이유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유가족 요구가 아니더라도 조합원의 죽음에 대해 노동조합의 회사에 공동 조사를 요청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거부했다. SBS사측은 마치 책임이 없는 듯 말하지만 드라마 편성과 예산, OTT계약 등을 사실 상 SBS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업무의 무리한 점을 따지려면 SBS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고인이 입사했던 회사도, 마지막까지 일했던 회사도 모두 원인 규명을 위한 협조를 거부한 사실 앞에서 유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다. 우리 힘으로라도 철저히 조사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뿐이다. 


 고인의 이름을 드러내야 하고, 그가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을 드라마가 알려져야 하고, 그 현장에서 여전히 일해야 하는 동료들을 고려해야 했기에 가족들은 공개 대응 여부를 숙고하고 또 숙고했다. 거대한 벽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유가족과 대책위도 결단을 내려야했다.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필요한 재발 방지대책을 만드는 것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고 건강한 일터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힘들지만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 


 SBS와 스튜디오S 사측에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감출게 없다면 피할 이유도 없다.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밝혀서 뜯어 고쳐야 한다. 양 사측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보다 신속한 조사와 대책 수립이 가능하다. 고인을 진정으로 애도하고 추모한다면 ‘노사공동조사위원회’ 구성과 참여를 수용하라. 이에 대해 3월 8일까지 노동조합을 통해 대책위원회에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우리는 사측과의 파국적인 갈등이 아니라 협조를 통한 제대로 된 조사와 재발 방지책 수립을 원한다. 만일 이때도 사측이 공동조사를 재차 거부한다면 유가족과 대책위는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독자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활동에 돌입할 것임을 밝혀 둔다. 진심으로 요청한다.


 고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날, 머리를 쥐어짜며 드라마 예산안을 네댓 차례나 수정한 그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보낸 SNS 메시지가 가슴을 친다. “모든 게 버겁다.” 고인의 머리 침대맡에는 ‘CG 우선 요청 리스트’라는 문서가 놓여 있었다. 고인의 영정 사진은 10년전 SBS 입사 지원서에 낸 사진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억울한 죽음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가 가진 지혜와 힘을 모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K-드라마와 한류콘텐츠에 대한 칭송과 환호가 쏟아지는 오늘,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미디어노동자들의 땀과 권리를 잊지 말자. 

2022년 3월 3일
스튜디오S 故 이힘찬 드라마프로듀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 기자회견 순서 및 대응 경과 보고, 유족 대표 발언은 첨부 파일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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