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 스위스에 다녀왔습니다.
기내방송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차창 밖에 김포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이제 나의 여정은 끝을 맺는구나. 벌써 한달간의 안식월이 끝나는가! 오늘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내일 하루를 쉰 다음 8월1일부터 출근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자꾸 다시 윗층 출국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고생한만큼 즐거움도 컸던 유럽에서의 시간들이 나의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구문명의 뿌리들은 도심의 곳곳에 현재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고딕풍의 고색창연한 건축물들, 수많은 조각상과 사진첩에서만 봐왔던 유명한 회화들이 배낭여행을 시작한 런던 히드로공항에서부터 마지막 프랑크푸르트공항을 떠날 때까지 내곁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풍물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새콤달콤한 소스처럼 곁들여져 왔다. '그래 이거야, 십사년 동안 새로운 자극으로부터 격리되어 거북이 등거죽처럼 쩍쩍 갈라진 내가슴에 단비를 적시고 타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온 거야.'
급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체력적 안배를 고려할 겨를도 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내가 보고싶은 것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같이 떠난 대학생들보다 두배 이상 다리품을 팔았다. 군 시절 접질렀던 발목이 다시 도지고, 인대가 늘어나는 고통을 파스로 때웠고 과로로 코피까지 쏟았다. 국이 없으면 밥을 먹기 주저했을 정도로 우리식에 길들여진 나였지만 빵으로 때웠다.(마지막엔 향수병에 한식당을 찾았지만) 그래도 내가 보고싶은 것을 이렇게 직접 대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이렇듯 새로 수혈 받은 체험과 경험들은 차곡차곡 내마음속의 사진첩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이 소중한 시간을 가져다준 안식월과 함께!
안식월이 다가오자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방학에 들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 저곳 조국의 비경을 돌아볼까, 조용한 곳에 홀로 틀어박혀 지친 심신을 추수려볼까? 아니면 방안에 틀어밖혀 잠자고 딩구는 게 지겨울 때까지 방바닥에 붙이고 살아볼까? 참 여러가지 안을 떠올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6월 중순이 되자 슬며시 아내가 안식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물어왔다. 결정한바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은근한 협박처럼 들려와 그때부터 조용히 여러사람들에게 한달을 쉬면 어떻게 하겠냐고 탐문을 해보았다. "직장생활하면서 한달을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있겠느냐, 지금까지 소모된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열에 아홉이었다.
그래, 언제 다시 나에게 이런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겠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거야. 당장 여행사를 찾아 유럽배낭여행을 신청했다. 아내는 들떠 있었다. 환상과 꿈으로만 그려지던 유럽을 직접 체험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붕떠서 떠나는 날까지 아내는 천정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다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두사람의 여행경비가 6백만원 정도로 만만치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금전적 준비가 없었던 터라 그 막대한 군자금(?)을 어디서 마련해야 하나. 몇달전에 집문제로 만들었던 마이너스통장 밖에 믿을 곳이 없었다. 눈을 질끔감고 쓰기로 했다.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인데 그 정도는 써도 괜찮아하며 나를 달랬다. 나는 그날밤 만년설로 뒤덮힌 스위스 융프라우흐 전망대에 서있었다.
김영훈 한겨레 편집미술팀장
/ 언론노보 287호(2000.8.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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