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 2024-07-03 14:40:50
지금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있나요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은유, 2024년
메일함에 차곡차곡 뉴스레터가 쌓여간다. 날마다 쌓여갈 앎을 상상하며 구독 버튼을 눌렀지만 밀린 학습지처럼 쌓여가는 뉴스레터를 약간의 죄책감 속에서 지워나가는 것이 일과가 됐다. 그럼에도 몇 개의 뉴스레터는 차마 지우지 못하고 한참 뒤에라도 열어보는데, 그 레터들에는 나름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 기자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기사를 쓰고 보냈을까’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라는.
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는 그런 뉴스레터 중 하나다. <인스피아>는 책을 기반으로 하지만 서평이라기보다 사회현상에 대해 기자가 질문(연구문제)을 하고, 여러 책을 ‘해찰’하면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글이다. 뉴스레터의 주제가 ‘가짜노동’이라면, 진짜노동이라는 개념은 있는지, 우리는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고, 20·30대의 ‘갓생취미’에 대해서는 취미란 무엇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취미는 힐링인지, 취미는 갓생이어야 하는지, 취미는 개인적인 것인지 등의 질문을 이어나가며, 여러 학자의 책들을 엮어 담론의 지형을 정성스럽게 그려나간다. 칼럼도 에세이도 전형적인 기사도 아닌 <인스피아>의 글들은 학술적인 글과 대중적인 글 사이에 걸쳐지며(뉴스레터의 디자인과 이름 또한 학술DB를 연상시킨다), 다른 글에서 발견할 수 없던 재미를 전하는데, 이 때문에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됐을지, 혼자 4년이나 써올 수 있었는지 등의 작가에게 가질 법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기자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질문은 기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글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지’라는 물음은 차치하고, ‘자신의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질문하거나 ‘누구를 향해 글을 쓰는지’, ‘누가 자신의 글을 읽을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내 기사의 독자는 데스크, 출입처, 타사 기자’라는 농담은 반 정도는 진실이다). 기사의 목적이 읽히는 것인데, 목적을 상실한 글들은 너무도 많고, 그런 상황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인스피아’를 발행하는 김지윤 기자가 쓴 책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침묵을 깨고, 기자로서 글쓰기에 대해 자문하며 고민과 실천을 풀어놓고 있다. 책은 제목처럼 책에 대한 예찬과 함께, 글‘쓰기’라는 기자의 본업에 대한 고민, 가치 있는 ‘읽기’의 구현물로서 책의 발견, 읽을 맛과 가치가 있는 글쓰기로서 뉴스레터 발간으로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먼저 무의미하고 소모적이고 자극적인 글의 생태계에서 쓰는 사람으로 읽는 사람으로도 겪은 불만과 혼란을 토로한다. 그러나 토로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떤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팩트와 반응을 적당히 엮은 기사 작성 관행에서는 한 개념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머물지만(그 개념이 반지성주의라면, A국회의원은 현재의 반지성주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도로 전달), 저자는 “그 개념이 어디에서 왔고, 그 맥락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이며, 오늘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조금 더 파고들면 어떨지”를 생각했다. 또 수년간 회사의 소셜미디어 관리 업무를 하며 많은 기사와 칼럼과 댓글을 읽고, 자신이 정말로 좋다고 느낀 글들에 독자들도 호응했다는 것, 그리고 생산자들은 잊고 있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읽는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과 사람들은 텍스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글, 신뢰할 수 없는 글을 싫어하는 것을 확인했다. 저자는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오랜 시간 생각을 다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제작하는 책이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좋은 글이라는 점을 깨닫고, 책을 매개로 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게 됐다고 밝힌다. 100회를 넘긴 뉴스레터는 기자의 질문, 때로는 무모하리만치 근본적인 질문이 끌고 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이 항상 성공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반영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좋은 글에 대한 저자의 오랜 궁리는 ‘상대에게 직접 말 거는 글쓰기’라는 텍스트의 본질로 수렴된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 따르면, 독자에게 말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쓰인 글은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글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은 저자가 자신의 주된 관심사라고 밝힌 “‘읽고 싶은 글’과 ‘쓰고 싶은 글’(써야한다고 생각하는 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든 줄이는” 것과도 연결된다.
한국언론정보학회 미디어이론과현장 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