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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함께 읽어 좋은 책] 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일까?

등록일
2024-08-07 13:40:40
조회수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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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일까?

토드 스트라서 지음, 김재희 옮김. <파도: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서연비람, 2017년: Todd Strasser. The Wave. Randam House, 1981.

57년 전의 작은 실험: 훈련, 공동체, 실천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Palo Alto)의 큐벌리(Cubberley) 고등학교 교실. 역사교사 론 존스가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와 파시즘을 열심히 설명한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흑백 스크린 속 다큐멘터리에서는 죽음의 집단수용소와 가스실의 처참한 장면이 흘러 나온다. 

평화로운 소도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온 아이들은 스크린 속 대량학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독일 인구의 10%에 불과했다던 나치당원들이 그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인구의 90%가 넘는 독일 국민들은 침묵만 하고 있었나? 왜 그들의 만행을 막지 않았나?  그저 상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나치 당원들은 눈도 귀도 양심도 없는 멍청이 기계들인가? 모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아이들의 반응을 본 존스 교사는 작은 실험을 결심한다. 일종의 ‘체험학습’이다. 나치독일의 파시즘에 침묵하거나 조종당하던 사람들 혹은 집단적 광기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겪었을 공포와 불안의 정서를 아이들이 직접 경험한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실험의 시작. 존스 교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면 ‘훈련’과 ‘공동체’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

‘훈련’, ‘공동체’, 그리고 ‘실천’을 강조하는 구호와 집단 규율 속에서 아이들은 환각 상태에 빠진 듯 열광했다. “파도(The Wave)”라는 이름의 단체에 소속되어 일체감과 결속력을 경험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이자 평등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의 열정과 연대의식은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파도”에 가입하지 않은 아이들은 소외와 차별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점차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들은 압박과 위협을 받았으며 폭력이 발생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존스 교사는 열병처럼 번져가는 아이들의 열기에 자기 자신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훈련을 통해 힘을 모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이들의 믿음과 소망,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 줄 지도자 선생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믿음과 소망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떨쳐낼 수 없었다. 지도자로 추앙받는 상황과 권력이 주는 흥분은 매혹적이었다. 뒤늦게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멈출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실험에 참여했는지, 정말 놀랍고도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는 얘기를 자꾸 되풀이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거기에 매료된 채 헤어 나올 생각을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았다.” (81쪽)

“얼떨결에 독재자가 돼 버린 불쌍하고 한심한 역사 선생, 그게 너인가?” (192쪽)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실험은 막을 내렸다. 권력자 히틀러와 파시즘에 환호하는 젊은 나치 당원, 그들의 모습이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출판된 소설이 “The Wave”(1981)다. 작가는 프리랜서 기자이자 소설가 토드 스트라서(Todd Strasser). 핵전쟁, 나치즘,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노숙자 문제 등 사회성 짙은 글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같은 해 미국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유럽에서 흥행한 독일 영화 <Die Welle>(2008), 넷플릭스가 독일의 세 번째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택한 <We Are The Wave>(2019)의 원작이 모두 동명의 소설이다. 

국내에서는 <파도: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2006년 도서출판 문화미래이프에서 출판되었으나 절판되었다가 2017년 서연비람에서 다시 출판했다. 2010년에는 EBS의 <지식채널e ~ 환상적인 실험>(2부작)에서 실험과 소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집단극단화: 나와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버드대 로스쿨의 선스타인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2011)에서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파시즘, 이슬람의 테러리즘, 르완다의 인종청소 등과 같은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 지금 우리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시즘은 역사상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도 똬리를 틀고 있다” (270쪽)

‘나’와 ‘우리’는 히틀러가 될 수도 있고 나치당원이 될 수도 있으며 홀로코스트를 묵인하거나 파시즘에 열광했던 소시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 대 강의 대결 국면이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며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는 모두 집단극단화를 우려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 대상은 (‘언제나’에 가까운) 대부분 ‘당신’ 혹은 ‘그들’이다. 그래서 지금, 좀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져 본다. ‘당신’ 혹은 ‘그들’이 아니라, ‘나’와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나와 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일까?! 

한국언론정보학회 미디어이론과현장 연구회

작성일:2024-08-07 13:40:40 1.217.16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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