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 2024-10-07 15:06:48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언론사, 그리고 기자의 노동
정인숙 지음, <디지털 플랫폼의 지배와 왜곡: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톺아보기>, 형설출판사. 2023년.
<디지털 플랫폼의 지배와 왜곡>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이 정치·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이 책의 저자 정인숙 교수는 오랫동안 방송산업과 정책을 비롯해 미디어 정책 연구를 해온 학자다. 책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편의성과 효율성을 부정하자는 반기술적 입장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이 사회 제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차원에 주목하여 그 실체를 보다 정확히 알고 적절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제2부 5장의 주제는 ‘노동: 위험관리의 개인화’다. 세부 주제로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 디지털 플랫폼의 유령 노동,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 디지털 플랫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국제적 노력 등을 다루고 있다. 5장의 인상 깊은 대목은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이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확산을 가져오는데, ‘긱’은 ‘일시적인 일’이라는 의미로 기업이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 또는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형태의 경제를 말한다. 과거에는 프리랜서나 1인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였다면, 오늘날에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와 단기로 계약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를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의 유령 노동은 과거 인형에 눈, 코, 입을 붙이던 단순노동처럼 인공지능의 이미지 학습을 위해 데이터에 이름을 붙이는 디지털 레이블링 작업과 같이 노동의 대가가 낮고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프레카리아트’ 계급에 대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유기윤 교수는 2017년 <미래사회보고서>에서 2090년 미래 사회계급을 4계급을 분류하였는데, 1계급은 플랫폼 소유자, 2계급은 플랫폼 스타, 3계급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인공지능, 4계급은 불안정한 노동계급으로서 ‘프레카리아트’ 계급이다. 프레카리아트는 2014년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그의 저서 <프레카리아트: 위험한 신흥계급>에서 사용한 용어다. 프레카리아트는 유연한 노동계약을 통해 노동 중개인 또는 고용 기관을 위해 간헐적으로 노동하며, 실업수당과 같은 권리 기반 국가 혜택과 투자 및 기여를 통한 개인 혜택이 부족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민의 권리를 잃어가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사실상 없는 지역 거주자로 남게 된다.
이 책에서 특히 제5장 ‘노동’에 주목한 이유는 오늘날 포털이라는 플랫폼이 뉴스 유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언론사와 기자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AI의 고도화와 활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언론사와 기자는 앞으로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 것 인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언론 환경에서는 신문사가 자체 플랫폼을 운영했다. 뉴스는 신문사에서 고용한 기자들의 협업을 통한 조직의 산물이고, 종이신문이라는 하나의 패키지 속에 뉴스 기사를 담아 그들이 운영하는 배포망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뉴스를 접하기 위해서는 기자 보다는 언론사의 명성과 신뢰가 중요했고, 동시에 자기 집 문 앞이나 사무실, 혹은 거주하는 지역의 거점 가판에 신문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만 했다. 신문 유통망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신문은 신문을 찍어도 독자들에게 도달할 수 없었다. 신문사의 독자 규모나 여론에 대한 영향력은 그 신문의 논조와 기사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독자적인 유통망의 유무와 규모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했고, 기존에는 이 같은 플랫폼의 운영에 덜 주목해왔다. 물론 신문을 수송하는 화물운송 기사나, 최종 독자에게 배송하는 배달 지국의 인력들은 신문사와의 고용관계에 있지는 않았지만, 신문사가 비용을 지불하여 유통망을 운영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종전과 같은 지위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뉴스는 더 이상 패키지가 아닌 개별 뉴스 단위로 유통되며,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더 의존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문사 자체의 온라인 플랫폼이 아닌,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각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1년 초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온라인 뉴스 이용 1순위 경로로 포털과 같은 검색엔진 및 뉴스 수집 사이트는 평균 33%인데 우리나라는 72%로 조사 대상 46개국 중 1위였다. 뉴스 웹사이트나 앱을 통한 이용은 46개국 평균 25%에 한참 못 미치는 5%로 조사 대상 46개국 중 46위였다. 포털 이용자들의 주목을 끄는 뉴스는 언론사의 이름값도, 이를 취재한 기자도 중요치 않고 소재와 제목이 중요해졌다. 이용자들이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뉴스는 아니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의 피상적인 기사의 클릭수와 그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중요한 시대다. 포털은 뉴스를 유통하는 플랫폼이고, 수많은 언론사들이 포털이라는 플랫폼에서 자사의 뉴스가 검색되는지 여부가 해당 언론사의 수익성과 존속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의 각종 보도자료를 비롯한 홍보자료, 광고성 메시지에 기반한 형태만 뉴스인 기사, 각종 TV쇼나 드라마 내용을 전하는 메시지, 사회적으로 인지도 높은 정치인을 비롯한 스피커들의 주장성 메시지, SNS나 게시판 등 각종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이 형식만 ‘뉴스’의 모양으로 플랫폼을 가득 메우는 시대다. 전통적인 방식의 취재를 바탕으로 제작한 뉴스 기사가 아니라 ‘무늬만 뉴스’가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가득 메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에 의존적일수록 언론사의 이름값도, 기자의 이름값도 의미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이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언론사와 기자는 저널리즘 영역에서 점점더 멀어진다.
유기윤 교수가 분류한 미래 계급 중 신문사나 기자는 1계급인 플랫폼 소유자가 되기는 요원해 보이며, 2계급인 플랫폼 스타가 되거나 아니면 4계급인 ‘프레카리아트’가 유력해 보인다. 신문사가 온라인에서 독자적인 플랫폼을 갖지 못한다면, 기자들은 더 이상 신문사라는 조직의 울타리에서 그들의 기존 지위를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 기자 개인이 플랫폼 스타가 되거나, 아니면 신문사와 저임금 또는 프리랜서와 같은 불안정한 고용관계 속에서 수익을 위해 플랫폼에 ‘무늬만 기사’를 재하청 받아 납품하는 4계급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보도된 기사를 제목만 살짝 바꾸어 반복적으로 송고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고 광고주의 광고나 홍보성 메시지를 전달하며,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이야기나 각종 콘텐츠 줄거리를 ‘뉴스 기사’라는 이름으로 만드는, 마치 인형의 눈, 코, 입을 붙이는 것과 같이 저임금의 단순 반복 노동으로 전락하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마저도 효율성과 편의성을 이유로 앞으로는 점점 더 AI에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이 책 <플랫폼의 지배와 왜곡>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의 편의성과 효율성, 그리고 이면에 있는 속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면서, 오늘날 우리 언론과 기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대입해 보길 권한다.
한국언론정보학회 미디어이론과현장 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