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금기에 가까웠던 ‘삼성의 문제’가 다뤄지는 것을 환영하면서 노동인권을 보다 많이 다뤄주길 바란다고 전해왔습니다. 노동인권,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언론이 주목할수록 ‘노동인권’도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보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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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어서, 삼성이니까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

 

그날, 현장에 기자는 두 명뿐이었다. 2014년 6월 28일, 무려 76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에 처음으로 민주노조의 단체협약이 생긴 날이었다.1)조합원 둘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하청업체 노사교섭에 삼성이 직접 등장하고, 몇몇 국회의원들이 만사 제쳐두고 문제를 파고들었는데도 그랬다.

“상대가 삼성인데 이길 가능성이 있겠나” 이런 냉소도, “발제하고 데스크와 싸웠는데 결국 기사를 못 쓸 것 같다” 이런 넋두리도, “아무리 삼성이 잘못을 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발목 잡을 일이냐” 이런 변호도, 삼성이어서 그랬다.
 

 

삼성의 위대함(?)은 법원이 국정농단의 공범 이재용을 석방해서 새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6천건의 노조 파괴 문서를 압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른바 ‘장충기 문자’에서 확인되는 삼성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실체를 목격해서도 아니다. 삼성은 언제나 그랬다. 기자, 국회의원, 공무원, 검사, 판사…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을 아군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위기를 극복했다.

삼성은 불법승계, 직업병 등 자신이 불리한 문제들도 자신의 방식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가 겪은, ‘삼성’이라는 사회적 경험은 그렇게 축적돼 왔다. 삼성은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무소불위의 집단이다. 삼성이 노동자와 시민과 주주의 면전에서 노조를 혹독하게 파괴하고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하고 직업병 피해사실을 철저히 은폐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삼성이어서 가능했다.

다른 한편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폭로하고 제보했다. 삼성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조를 지켰고, 반올림은 농성장을 지켰고, 경제개혁연대는 불법승계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고, 진보정당들과 국회의원 몇몇은 헌신했다. 삼성이니까 그랬다.

그런데 지금 뉴스를 보면 성역이 무너진 것 같다. 특히 검찰발 소스가 쏟아지면서 그렇다. 보수언론 몇 곳을 빼고 언론은 삼성의 노조 파괴 기사를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MBC KBS SBS2) JTBC YTN은 ‘단독’이 아니더라도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일간지, 통신사, 인터넷언론, 주간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도 삼성의 노조 파괴 취재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와 언론의 압박이 강해지자 결국 삼성전자서비스는 하청업체 노동자 8천여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나 짚어야 할 것들이 있다. 언론이 쏟아내는 삼성의 노조 파괴 기사 중 핵심적인 사실과 사건들은 과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폭로한 이야기다. 속칭 ‘그린화’ 문건은 2014년 나왔고, 고 염호석씨의 시신 탈취 과정에 삼성이 개입한 정황과 증언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조합원을 돈으로 회유해 노조 탈퇴를 유도한 사실, 노조를 없애기 위해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사실 또한 노조가 이미 폭로한 것들이다. 상대가 삼성이어서 언론이 보도하지 못했고 좀더 파고들지 못한 것들이었다.

 

촛불, 정권교체, 공영방송 정상화, 검찰 수사, 재벌개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삼성이니까 이런 보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제대로 못했다면 이제라도 하면 된다. 우리는 지금 삼성을 바꿔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지 않나. 이런 점에서 나는 삼성을 보도하는 언론이 더 많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삼성이어서 기사를 못 썼고, 삼성이니까 기사를 더 쓰는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자본, 정부, 사업주의 반대편에서 소리쳐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언론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노조 파괴’ 현장을 보도한 만큼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처럼, 언론이 비정규직·이주노동자·여성·장애인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 바뀔 것이다. 삼성을 보도하듯 보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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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6년 무노조경영 삼성에 첫 ‘단체협약’ 생겼다

삼성 노사, 단협 합의… 고 염호석씨 ‘사과’, 노조 보장, 기본급 쟁취(2014.6.28 미디어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56

 

2) 삼성 관련 지상파 보도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이재용 승계 작업 문자에 드러난 삼성의 힘’(2018.2.5.), ‘삼성-언론유착 문자’(3.4, 4.1), ‘폭식 투쟁의 배후를 밝힌다’(4.22), ‘삼성, 보수단체 육성했다’(5.6) 등 삼성 재벌 문제를 다루고 있다.

KBS 추적60분 ‘삼성공화국-D-64 이건희 차명계좌, 이대로 묻히나’(2018.3.7.) ‘삼성공화국-이재용은 어떻게 풀려났나’(2018. 3.14) 등을 다뤘다.

SBS 8시 뉴스(3월19~20일) 탐사보도팀이 에버랜드 땅값 평가 등 삼성 경영 승계 관련 의혹을 연속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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