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해직을 말한다’ 기획 세미나

군사재판정에 섰던 윤덕한 기자 “기자들의 양심적 행동은 제작거부”

물고문 당했던 유숙열 기자 “언론인으로 역사의 부름에 응답”

“80년 기자들의 최소한 양심적인 행동이 제작 거부였다. 전두환 군부의 탄압을 각오했었다.”(윤덕한 전 경향신문 정치2부장)

80년 강제 해직 된 윤덕한 기자가 38년 전 벌어졌던 경향신문 동료들과 함께 벌인 전두환 군부에 항거한 투쟁을 증언해 나갔다. 윤 기자는 당시 제작거부로 무료 광고와 백면이 절반 이상 차지한 경향신문 1면, 언론인 8명의 연행 사태를 사회면에서 다룬 경향신문 6월9일자, 86년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지 등을 보여 주면서 당시 사태를 설명했다. 윤덕한 전 기자는 이어 조작된 사건으로 반공법으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선고받는 재판 과정을 묵묵히 말했다.
 


6일 국회 의원회관 2소회의실에서 열린 ‘80년 해직을 말한다’ 기획 세미나에 80년 당시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이 참석해 △1980년 검열과 제작 거부 투쟁 △전두환 군부의 악랄한 탄압 △해직 기자들의 투쟁 과정 등을 이야기 했다.

유숙열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80년 5월 우리들은 생명을 걸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유숙열 공동대표(당시 합동통신 기자)는 80년 7월17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한 과정을 전했다.

유숙열 공동대표는 “김태홍 선배의 친구를 화실에 숨겨줬다가 대공분실에 잡혀갔고, 수사관들은 나를 심하게 고문했다. 내가 검붉은 피같은 액체를 토해내자 ‘너 죽으면 우리가 큰 일’이라며 의사를 수배해 불러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숙열 공동대표는 80년 해직과 물고문 등 이후 언론 취업이 사실상 금지된 상태에서 겪은 삶을 이야기했다.

“80년 5월 광주는 나를 해직기자로 만들었지만 나는 그 시절 발견한 페미니즘으로 내 인생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 기자의 길을 선택한 언론인으로서 우리가 살아야할 길이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는 “80년 언론인 투쟁은 광주항쟁의 일부임에도 광주항쟁에서 제외시킨 것은, 광주항쟁을 지역적인 문제로 국한하려는 신군부에 동조적인 정치권이나 공범 역할을 했던 일부 언론사 고위층 등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고승우 박사는 이어 “최근 드러난 계엄령 검토 문건(2017.3)은 80년 광주학살 당시 강행된 전국언론인들의 검열 제작거부에 대해 보안사가 자행한 언론인 강제 해직, 언론사 불법 통폐합이라는 범죄가 연상됐다”고 전했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1980년 검열거부 투쟁은 당대에 가장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반민주적 질서에 전면으로 맞서 언론을 지킨 투쟁이며, 항쟁과 학살의 진실을 보도하려 했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석춘 교수는 이어 “언론사를 알려주는 대학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며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과 80년 해직 언론인들의 제작거부 투쟁 등을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가 확인한 707명의 해직언론인 명단을 밝히면서 “우리는 여러분들을 불의한 시대, 야만의 시대에 맞섰던 정의로운 언론인으로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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