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50주기 맞아 발표

"노동에 부정적 편견 조장하는 용어 사용 배격"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이 전태일 열사 50주기(2020년 11월 13일)를 맞아 ‘노동 존중 보도・제작 실천 선언’(이하 ‘실천선언문’)을 채택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의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과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언론노동자의 실천선언문을 채택해 발표했다.

 

실천선언문은 보도와 제작에 사용되는 노동 관련 용어를 바로잡고 노동 관련 사안의 취재・제작・보도 시 지켜야 할 원칙을 정하고 있다. 특히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근로(자)’는 ‘노동(자)’로 표현하고, ‘민노총’이 아닌 ‘민주노총’으로 정확히 표기하자”며 “(노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조장하는 용어 사용을 배격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파업 등 단체행동의 배경과 취지를 충실히 취재・보도한다”고 정하고 있다. 일방적인 ‘불법파업’ 주장이나 수구언론이 ‘시민 불편’만을 강조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파업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소상히 취재해 보도하자는 취지다.

 

이 외에도 언론노조는 ▲정부・경제인 단체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기사화 할 때 노동조합 및 노동관련 연구단체가 제공하는 상이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기ᅠ▲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자본의 이윤 추구를 철저히 감시하기ᅠ▲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여성・이주노동자・청소년 등 약자의 노동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함을 주지하고 취재・보도・제작하기ᅠ▲언론인 역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취재・제작 과정에서 협업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등을 실천선언문에 담았다.

 

이 실천선언문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초안을 작성하고 언론노조 제15차 중앙집행위원회의(10월 22일)에서 채택을 확정했다. 관련해 윤석빈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실천선언문을 채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란 수사 뒤편에 가려진 엄혹한 노동현실과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언론노동자의 사명”이라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어두운 곳, 힘든 곳에서 불안정하게 일하는 노동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노동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현장을 얼마나 보도하느냐 하는 수량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노동을 바라보는 언론인의 시각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고쳐야 할 것이냐 하는 고민(에서 실천선언문이 나왔다)”며 “언론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고 현장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언론노조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병운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우리가 앞으로 노동을 존중하도록 언론의 풍토를 바로잡으면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change word, change world’라는 말처럼 제대로 된 말과 글로 노동에 접근해 노동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게 하자”고 말했다.

 

장형우 언론노조 서울지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 의장(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장)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독학으로 공부하며 ‘대학생 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며 “우리 언론노동자들은 전태일정신을 새김과 동시에 이 시대의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밝혔다.

 

박태외 언론노조 미디어발전협의회 의장(언론노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지부장)은 “보도와 제작 뿐만 아니라 언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바로잡아 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면서 “언론노동자 모두가 연대해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

 

노동 존중 보도 제작 실천 선언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언론의 화려한 수사 뒤편에 노동자들의 신음은 철저히 감춰져 있다. 2020년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극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고, 남녀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359만 명, 교섭권 행사를 제약받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221만 명에 이른다. 한 해 평균 2,323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것이 대한민국 노동의 현주소다. 열악한 노동여건 만큼이나 열악한 것은 노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부정적 편견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언론의 책임은 결코 적지 않다.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언론 종사자 역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50년 전 오늘 노동기본권을 외치며 분신 항거한 전태일 열사의 ‘인간 선언’ 정신을 되새기고, 노동존중 보도·제작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노동인식과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언론의 사명임을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실천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 ‘노동’과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조장하는 용어 사용을 배격한다.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근로(자)’는 ‘노동(자)’로 표현하고, ‘민노총’이 아닌 ‘민주노총’으로 정확히 표기하고, ‘귀족노조’, ‘강성노조’, ‘밥그릇’, ‘철밥통’ 등 멸칭과 비하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임을 전제로, 파업 등 단체행동의 배경과 취지를 충실히 취재‧보도·제작한다. 

‘불법파업’여부에 대해 일방적 주장을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파업에 이르게 된 경위와 요구사항에 대해 노동조합 관계자를 직접 취재한다. ‘시민 불편’에 대해 취재하는 경우에도 파업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 정부‧경제인 단체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기사화할 경우 노동조합·노동관련 연구단체에서 제공하는 상이한 자료가 있는지 충실히 취재·제작한다. 

  파업으로 인한 경영 손실 규모가 과장되었거나 산출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보도·방송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불가피하게 이를 인용할 경우 한쪽의 일방적 주장임을 정확히 밝히고, 반대측 주장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노사 양측의 자료가 상반되는 경우 각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 노동자의 생명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본의 이윤추구를 철저히 감시한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원인과 해결 방안을 중심으로 안전한 노동환경 개선에 기여하도록 노력한다. 

 

-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청소년 등 약자의 노동에 대해 더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함을 주지하고 취재‧보도·제작 시 적극 반영한다. 

  불공정한 고용계약과 직장 내 갑질, 보이지 않는 차별을 고발하고 취약계층 노동자의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한 보도와 제작에 힘쓴다.

 

- 언론인 역시 노동자라는 자각 하에, 취재‧제작 과정에서 협업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도록 각별히 유의한다.
탈법적 프리랜서 계약, 우월적 지위에서의 권한남용, 장시간 노동 강요 등 언론노동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성찰하고 근절하도록 앞장선다.

 

2020. 11. 13.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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