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권!
민주주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네

복진선(KBS노조 교육선전국장)


아쉬운 반판 4.13 총선
2000년 4월 13일 오후 6시, 투표가 끝남과 동시에 나팔수의 전통을 자랑하는 양방송사는 일제히 투표자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우리의 공영방송 KBS는 창원을 권영길 당선확실, 울산북구 최용규 우세 경합을 발표한다. 창원의 상가 2층건물에 위치한 권영길 후보의 사무실엔 환호성이 울린다. 운동원들이 권영길을 연호하고 대기하던 카메라는 일제히 플레시를 터뜨리고 ENG카메라 또한 권후보를 클로즈업하고 환호하는 동지들을 스케치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MBC의 여론조사 결과는 울산북만이 당선확실로 나올 뿐 창원을은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하는 곳으로 분류한다. 사무실은 찬물을 끼엊은 듯 조용해지고 순간 나도 마치 공영방송의 책임을 대표하는 사람인양 몸 둘 바를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게 뭐야! 잘못하면 쪽 다 팔겠구만." 내 핸드폰이 바삐 울려댄다.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에 당황한 분들이 전화를 통해 현지 사정을 구하려 하지만 내가 뭘 아나. 결국은 개표를 해봐야 하는 일이지. 결국 지루한 개표가 시작되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약 5천여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에게 석패하고 만다. 창원을 사무실에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울 무렵 더욱 경악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울산북구의 최용규 후보의 승리가 불안해진 것이다. 결국 울산북구도 300여표차로 날아갔다. 모두의 얼굴에는 허탈함이 희망의 그림자를 덮고 있었다. 개표가 종료되고 사무실에는 선거기간 동안 희망 하나만으로 자신을 던졌던 동지들이 모였다. 형식적인 패배와 나름의 승리와 희망을 이야기한 권영길 후보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어찌됐든 다시 4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원에 내려온 지 5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낸 성과도 대단한 것이지만 이번 선거의 과정은 노동자 서민의 당이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리홍보의 전과정에 참여한 삼미특수강 해고자 동지들, 거리 유세마다 신선함을 보여준 대학생 동지들의 참여, 선거의 전과정에 힘이 되었던 창원의 노동자들, 하루 세끼 식사를 직접 준비해준 각 노동조합 등 기존의 보수정치권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후보자 선출방법 역시 상향식 공천으로 울산북구와 같이 기존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역의 후보는 지역의 대의원들이 뽑는 진정한 대의민주주의의 실험이 정착된 것이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21세기 정치의 방향은 정당민주주의의 확립과 당리당략을 떠난 진정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면 그 유일한 대안은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되었다. 문제는 이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첫 승을 해야 다승왕을 꿈꾸는 것이다. 이겨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이겨본 자 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준비된 자의 몫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은 것도 많지만 결국 패배를 불러온 우리의 결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급박한 지역구 결정, 당선에 대한 전략 부재, 선거 기획의 아마추어리즘 극복, 불충분한 선거자금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나는 한가지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80%의 노동자 서민을 대표한다고 했지만 선거의 과정이 80%가 이해하고 대표로 인정할 만한 것이었는지. 과연 그들의 정서를 고려하고 그들의 정치수준에 맞는 것인지를. 노동관계법에서조차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선거는 대중과 정치가 결합하는 하나의 시장이다. 이제 4년 우리도 시장에 먹히는 상품을 만들고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고 우리는 80%를 대표하여 이 나라 정치시장의 승자가 되어야 하니까.


/ 언론노보 279호(2000.4.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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