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와 90년대의
그러나 변하지 않을
체험에 담긴 꿈

방현석 장편 {당신의 왼편} 1·2
김별아 장편 {개인적 체험}

김 이 구 (문학평론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청춘기를 보낸 세대가 그 뜨거웠던 체험들을 되살려낸 장편들을 발표했다. 김별아의 {개인적 체험}(실천문학사)과 방현석의 {당신의 왼편}(해냄)에는 삼사십대가 공유하고 있을 여러 체험과 정서들이 강렬하게 담겨 있다. 김별아의 주인공은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시외버스 차장이 되어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지만 "내가 밑바닥부터 변하는 건 아님"을 통감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91년 강경대의 죽음과 잇따른 분신으로 가파르게 소용돌이치는 정국에서 운동권을 질타한 김지하의 글로 인해 크게 상처받고, 연일 벌어지는 집회와 충돌의 이면에서 청소 아줌마들의 항의 파업에 부딪쳐 입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방현석의 인물들은 80년 5월을 문무대 입소 훈련중에 맞으며, 문학과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지만 예술가의 길 대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숱한 파란곡절을 겪는다. 5월 광주의 살육,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의 고문 폭로, 그리고 90년대 말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재생해놓는다.
이 체험들은, 나 자신 이 작가들과 동세대에 속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설작품의 일부라기보다 날것 그대로의 재현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황금기를 할퀴고 간 이 체험들이 소설에 등장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을까. 그리고 그만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어째서 이 체험들은 최초의 그 순간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김별아는 퇴폐와 감상으로 얼룩진 '후일담문학'이 일종의 신드롬으로, 패션으로 자리잡은 현실을 지적한다. 방현석은 "90년대 내내 80년대에 싸웠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능멸뿐이었다"고 분노한다. 꽃은 피어야 지고, 열매는 익어야 떨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이들이 되살려놓은 80년대, 90년대 체험들은 그 안에 담긴 꿈과 희망들이 여전히 꽃피지 못하고 열매맺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외쳐야 하는 것이다.
"기억의 힘이 망각을 이길 수 있을까. 현실로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때?"
"글쎄, 혹시 알아. 이것이 내게는 미궁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사다리가 될지."({당신의 왼편})
"어쩌면 나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십년 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때와 다름없는 체험을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개인적 체험})
이러한 순수성, 이러한 완고함이 오늘의 '진보된' 현실을 만든 동력이다.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창작과비평사)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작과비평사)은 좀더 소설의 구도 속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반추한다. 전자는 학살의 원흉을 기어코 물리력으로 직접 응징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상징적 메시지를 던지며, 후자는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의 신산한 생애를 통해 보답 없는 현실의 지속 가운데서도 엄연한 생의 존엄을 엿보게 한다.


/ 언론노보 281호(2000.5.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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