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혹시 언론중재위원회에 가 보셨나요? 거길 누가 왜 가는 거죠?

A :  가 봤습니다. 기자라면 가끔 갈 일이 있죠. 기사가 그릇됐거나 거짓마저 담겨 자기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한 분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언론중재위에 신청하거든요. 화가 좀 많이 나신 분은 정정뿐만 아니라 손해 배상까지 요구합니다. 좀 가볍게(?)는 ‘반론’, 그러니까 자기 주장을 보도해 달라기도 하죠. 하니 서울 세종대로 124번지 언론중재위엔 기사를 쓴 기자뿐만 아니라 중재를 신청하신 분도 갑니다. 지역 중재부도 열 곳에 있고요.

‘중재’는 맞서 다투는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화해시켜 주는 거죠. 그럼 끼어들 사람이 믿을 만해야 할 텐데 주로 변호사와 대학교수 같은 이가 맡습니다. ‘중재위원’이라 부르는데 예전에 기자였던 사람도 있죠. 이들과 함께 다툼에 끼어들어 이견을 조정하거나 판단해 주는 중재부장 자리엔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앉아 있어요. 이런 짜임새여서 중재위가 뭔가 결정하면 법원과 비슷한 힘을 냅니다.

 

Q : 그럼 하던 대로 중재하면 되겠네요.
왜 ‘언론중재법’이 어떻고 ‘손해배상’이 어떻다 해 가며 연일 시끄러운 거죠?

A :  이른바 ‘가짜뉴스’를 쓴 언론사에게 징벌에 가까운 손해배상액을 물려 다시는 같은 짓을 하지 못하게 막자는 뜻으로 보여요.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때 북한군이 있었다’는 거짓말을 허투루 전한 언론사에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마땅하다는 데엔 동의하겠지만, 모든 보도를 가짜와 진짜로 탁탁 나누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 ‘허위’이고 얼마나 ‘조작’했는지를 나누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불리한 기사에 대해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대기업등이 언론의 비판보도에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런 부분이 충분히 논의되지도 않은 상태라 성급하고 위험합니다. 국회 안팎과 언론계가 연일 시끄러운 까닭이겠죠. 개정안이 유권자 뜻을 좇는 것으로 생각한 듯한데 개정안이 되레 표현의 자유와 시민 복지를 억누를 수 있어 걱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언론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피해자를 구제하는게 아니라 엉뚱하게 권력과 자본을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하는 좋은 뉴스를 막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Q :  ‘징벌적 손해배상제(이하 징벌적손배제)'라··· 말이 좀 어렵네요.

A : 언론이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어기거나 허위・조작 보도를 꾸준히 거듭해 피해를 더하고, 사진・삽화・제목 등을 내용과 다르게 했을 때 손해액이 아니라, 그 몇 배를 물게 해 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함정이 너무 많습니다.

고의 중과실을 저지르면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배상기준은 물론이고, 고의 중과실로 추정하도록 한 행위들이 명확하지 않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많아서 논란의 대상입니다.

 

Q : 징벌적손배제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게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해 주세요.

A : ‘가짜뉴스’ 잡는게 목적이라는데 정작 건강하고 꼭 필요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 행위를 위축시키게 될 것입니다. ‘징벌’될 수 있다는데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물어보고 서슴없이 보도할 수 있겠습니까. 강심장이어도 웬만해선 쉽지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취재하다가 위법 사항이 생기면 징벌적손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취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도로교통법 위반까지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거죠.

고의・중과실 판단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해 제멋대로 해석될 우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악의적・극심한 피해・중대하게 침해・왜곡하여 인용' 등의 문구가 기준으로 사용될 텐데, 그게 ‘얼마나 악의적이고 극심하며 중대할지’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몇 가지 고의 중과실 추정 조항을 멋대로 해석해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는 무조건 ‘가짜뉴스’ 딱지 붙이는 정치인들과 재벌, 범죄 혐의자들이 정당한 언론 보도에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고 입을 막으려 들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사실입니다.

 

Q.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A. 징벌적 손배제도를 도입한 미국도 실제 언론에 대한 적용은 대단히 신중합니다. ‘현실적 악의’를 원고가 입증해야 하고, 정치인이나 공인은 명예훼손 소송을 해도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행 민주당 법안은 설계 자체가 미국 제도와는 완전히 거꾸로 돼 있습니다. 입증책임도 언론에게, 정치인과 공인, 공직자에게도 징벌배상 소송을 마구 남발할 길을 열어 놨습니다.

 

Q. 언론을 규제하는 다른 법들도 있지 않습니까?

A. 비슷한 법률이 너무 많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언론 규제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언론중재법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법을 통해 언론 보도 및 취재 행위를 제재하고 있죠. 헌법, 민법, 형법, 정보통신망법 등에 언론 행위가 타인의 권리나 명예를 침해하거나 훼손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1980년 12월 언론기본법에 ‘언론중재’ 제도를 처음 담은 뒤 40년여 동안 수많은 다툼과 조정과 화해가 여러 법에 이미 녹아든 거죠.

 

Q : 징벌적손배제가 문제라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A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현업 언론 4단체는 이미 지난 6월, 언론 보도에 의한 시민 피해 배상을 강화하고 시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공개 제안했습니다. 이 안엔 언론 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 배상을 강화하면서도 저널리즘을 위축시키지 않을 방안이 담겼죠. 언론 등이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하여 인격권에 중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해당 언론사에게 손해액의 세 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조항(손해배상에 대한 특칙)과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인, 공직자(후보자), 대기업 관련 보도 및 공익신고법상 공익 관련 사안 등에 대한 보도는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어요. 또한 형법 제33장 명예훼손에 관한 죄는 삭제하여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는 민법으로만 다루어 이중 처벌 문제를 해소해야 언론의 정당한 사회 감시 기능과 비판 기능이 제대로 유지돼 부패 방지와 권력 견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Q : 얼핏 ‘열람 차단’인가 하는 말도 들렸어요.

A: 네. ‘열람 차단 청구 표시’인데요. 언론 보도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기사가 노출되지 않도록 언론사에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청구한 사실을 기사에 표시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인터넷 기사 제목이나 본문 위쪽에 드러내 보이고, 독자가 그 표시를 클릭하면 청구한 내용까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좀 곤란해 보여요. 기사를 읽기도 전에 ‘아, 이 보도엔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로구나’ 하는 딱지가 붙는 셈이니까. ‘이 기사는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라고 미리 말해 주는 것과 같은 거죠.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언론 편집권까지 크게 흔들어 깨뜨릴 겁니다.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을 한 정치인과 공직자와 기업인이 이른바 ‘열람 차단 청구 표시’를 이용해 보도에 흠집을 내는 일까지 벌어질 테고요. 실제로 언론중재위 중재 신청이나 정정 보도 청구 소송을 ‘후속 보도를 막는 꼼수’로 여겨 남발하는 정치인과 공직자와 기업인이 많습니다.

이 규정이 도입되면 불리한 기사에 대해서는 일단 부인하고 ‘가짜뉴스’ 타령하는 정치인과 기업인, 범죄자, 권력자들이 ‘열람차단 청구권’을 가장 애용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다 그저 청구사실을 표시하지 않는 것만으로 고의 중과실로 추정해 5배까지 손해배상하는 게 가능하도록 해 놓기까지 했습니다.

이쯤되면 이건 시민 피해 구제가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의 셀프 보호용 언론 입막음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아마 가장 반길 사람들은 변호사들이 될 것입니다. 언론의 기능은 대폭 위축되고 망가질 것이 자명하지만,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 남발로 인한 수임료 수입을 톡톡히 챙길 수 있겠죠. 언론피해자들이 지금도 소송비용도 안 나오는 보상을 받는다고 해 놓고 징벌손배로 소송가액이 올라가면 법률비용만 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더불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시민도 못 지키고, 언론도 망치는 악법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안입니다. 철회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강행처리는 중단하고 국민공청회부터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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