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산별의 의의와 전망

주동황(광운대 신방과 교수)


지금 한국언론노동운동이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을 놓고 각 언론사 노조가 연이어 총투표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5월 29일에 부산일보 노조가, 그리고 30일에는 최대 규모의 전국조직인 KBS 노조가 각각 94%와 82%의 찬성으로 산별 조직전환에 동의, 조직변경안을 가결했다. 스포츠조선 노조도 31일부터 총투표에 돌입해 있는 중이다. 부산일보와 KBS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지지율 덕분에 언론산별노조 건설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더욱이 그것은 대다수 조합원들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진행될 타사 노조의 투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결국 올 9월 언론산별노조 출범에 큰 힘을 보태줄 것으로 여겨진다.
언론산별노조는 현 언론노련의 단순한 조직 전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난 10여년간에 대한 반성과 평가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특히 언론사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무엇보다 언론노동운동의 설자리가 점점 실종되어 갔던 것이다. 방송시간의 연장과 지면 확장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인력 충원 없이 업무가 강행되어 노동강도가 대단히 높아졌다. 언론노동운동이 활기를 띠어야 할 국면이었지만 치열한 시장경쟁 때문에 오히려 자사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언론노동자들이 언론사주를 위한 박수부대나 '마름'의 수준으로 떨어져버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언론사간에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언론노동자간의 고용조건 격차도 확대되고 분열이 심화되는 양상을 빚어왔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IMF 경제위기는 언론노동운동의 현주소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언론사의 엄청난 채무와 금융비용 등 부실경영의 원천이 바로 언론사주의 경영전횡으로 비롯된 것인데도 그 책임은 언론종사자가 모두 뒤집어써야만 했던 것이다. 수많은 언론종사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감봉과 분사와 연봉제가 거침없이 단행됐다. 자본의 칼날 앞에 현재 노조의 힘이란 정말 미약한 수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절감했던 것이다.
언론산별노조 건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지금보다 언론노동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을 필요로 하면서 비롯됐다. 산별노조가 되면 무엇보다 중앙조직의 역량이 보다 강력해지고 전문화될 것이고, 이를 통해 노동여건 및 관련 법제도의 개선투쟁을 효율적으로 추진해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자격의 가입도 가능해지고, 또 기존 신문과 방송 부문뿐 아니라 뉴미디어, 출판, 인쇄 등 폭넓은 미디어산업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어 조직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강력해질 것이다. 나아가 기업별 노조 차원에서 보호할 수 없었던 비정규직 종사자나 IMF 실직언론인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산별노조의 출범은 무엇보다 언론사주와 국가권력을 상대로 공정보도 및 편집권 쟁취 등 언론민주화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펼쳐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0여년전 언론노조 탄생의 이념적 기둥이었던 언론민주화운동의 진척은 지금까지 과열시장경쟁 속에서 오히려 상당 부분 뒷걸음질해왔고 그 전망도 불투명하게 보일 뿐이다. 이것은 언론노동운동을 뒷받침해줄 맑은 정신과 자세가 흐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출범할 언론산별노조가 안고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에 언론민주화운동의 회복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언론노보 282호(2000.6.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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