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사람의 얼굴로 돌아보기

강원도, 지리산

젊은 넋 떠난 곳에

혁혁한 공 전승비

무릇 전쟁이란 喪禮이니

노자가 이미 설파한 것을...



올해 초의 일이므로, '그건 세상이 바뀌어 이미 옛날 얘기로 변했다'는 핀잔을 듣길 간절히 바라면서, 얘기 하나를 해보겠다. 몇 달 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가운데 하나인 7번 국도를 따라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뜻하지 않게 이북의 잠수함이 왔었다는 지역을 지나게 됐다. 강원도는 그곳을 이른바 '안보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건져낸 잠수함을 해변에 전시하고, 달아났던 '공비'들의 침투로를 지도로 그려 붙이고 있었다. 잠시 차에서 내려 안내문을 읽어보았다. 나는 거기에 최소한 '분단 조국에서 태어난 죄로 젊은 나이에 죽어야만 했던 이들의 영혼을 달랜다'는 정도의 내용이 포함돼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거기엔 죽어간 젊은 영혼을 달래는 내용은 한 구절도 없고, '잠수함으로 침투한 공비를 일망타진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는 상투적인 문구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메모를 하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므로 구절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부디 안내문의 내용이 바뀌어 강원도 당국이 언론노보에 정정을 요구해오면 고맙기 그지없겠다.)
나는 좀 끔찍했다. 사람이 죽은 곳인데, 죽은 사람의 처지에서 보자면 정녕 한스럽고 외롭고 억울하게 죽어간 곳인데, 어떻게 진혼의 말 한마디가 아깝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 아닌' 경우를 당한 게 한두번은 아니다. 지금부터 17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 뱀사골에 갔을 때, 그곳에 서있는 '지리산지구 공비토벌기념비'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채 다 피어나지 못한 젊은 넋들이 죽어간 곳에, 그 원귀를 달래는 말 한마디 없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내용의 전승비를 세울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는 무섭다. 정동진 가는 길에서 놀란 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유아적인 의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데서 오는 절망감과 당혹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젖은 마음으로 푸른 바닷빛을 보며 그 '공비'들의 혼을 달랠 때, 평소 읽고 또 읽는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노자}의 어느 구절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전승비의 비문을 기초한 이들에게 나는 이 책 31장을 읽어주고 싶다. 조금 길지만 그냥 옮겨보자.
"대저 병기란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다. 뭇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싫어하니, 길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 처하지 않는다. 참사람은 평소엔 왼쪽을 귀하게 여기다가도 군사를 일으킬 때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병기란 것은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므로 참사람이 쓸 도구가 아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그것을 쓸 뿐이니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늘 덤덤한 것이 가장 좋다. 이겼다고 해서 그것을 멋지다고 여기지 않는다. 전쟁에서 이긴 것을 멋지다고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기는 자이다. 대저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기는 자가 어찌 하늘아래서 뜻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좋은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궂은 일에는 오른쪽을 높였다. 부사령관이 왼쪽에 거하고 총사령관이 오른쪽에 거하도록 한 것은 상례(喪禮)로써 전쟁에 임하라는 말이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면 아파하고 슬퍼하며 울 일이다. 전쟁에선 이기더라도 상례로써 처할 일이다."



/ 언론노보 284호(2000.6.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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