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우리

전체에 대한 통찰 필요

부일노조 산별 최선봉 자신감



'최초로 파업 승리를 이끈 언론 노조' '최강의 언론 노조'
부산일보 노조를 이야기할 때면 늘 등장하는 화려한 수식 문구들. 우리 조합원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표현들이지만 왠지 날이 갈수록 겸연쩍기만 하다.
파업 승리의 의미야 영원히 유효할 터이지만 이미 십여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기에 생동감이 덜하고, 외부의 평가처럼 비교적 '힘있는' 노조란 사실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겨우 언론사 노조, 그것도 신문사 노조란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얘기 아닌가.
88년 파업 승리 이후 부산일보 노조는 공정보도 실현과 노조원 복지 향상이라는 두 개의 목표만을 위해 싸워왔다. 물론 이는 지금까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향 가치였다.
그러나 우리가 조그만 내부 승리에 자족하며 안주하는 동안 이 땅 전체의 언론개혁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때로는 거슬러 가고 있었다. IMF 위기가 닥치면서 대부분의 언론노동자들은 개별기업별 노조의 한계 속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또 우리가 임금을 더 따냈다며 다행스런 웃음을 짓는 동안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원들이 남몰래 내쉬는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만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은 동일 산별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되어 왔던 것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자본과 사측의 어떠한 탄압으로부터도 자신 스스로를 지켜내기가 어려웠다.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데만 전력하는 사이 주변의 숲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숲 전체를 가꾸는 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마땅한 일이다. 숲이 망가지면 아무리 잘 가꿔진 나무들이라 한들 말라죽는데 별로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테니.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괜히 하향평준화되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이 정도 관심이라도 있으면 다행인 편이다.
"여전히 산별노조라는게 선뜻 와 닿질 않네요"
대부분 조합원들의 반응이다.
지난해, 또 그 이전 해에도 계속해서 노보나 대의원 수련회 특강 등을 통해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일상화된, 다시말하자면 산별노조의 당위성에 대한 꾸준한 교육이 없었기에 노조 집행부만의 다짐 정도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동안에 주변의 숲이 얼마나 망가져 가고 있나를 전체 노조원들은 모르고 지내온 셈이다.
이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 어느덧 산별 전환 찬반투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노련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던 산별노조 출범이란 오래된 과제가 드디어 실현 단계에 이른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정답은 하나 뿐일 터이다. 부산일보 노동조합 투쟁의 역사에서 언제나 그러했듯 우리 조합원들을 믿고 모든 걸 맡기는 것.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어느새 판세를 읽어내고 하나로 뭉쳐서 바른 길을 선택하는 우리 노조원들의 막강한 저력을 믿는 길 외에 궁극적으로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노조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는 동안 앞으로의 준비 과정이 힘들 것이란 우려보단 내년부터 우리 노조를 수식하는 문구가 하나 더 생길 것 같다는 자신감만이 가득해지는 건 역시 우리 노조원들의 저력에 대한 확신 때문일 게다.
'산별 전환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선 선진 노조'
-이 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


<27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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