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개혁 - 공판제가 시작이다.


공판제 유일한 대안 공동기구 지혜 모아야

경품 무가지 근절 - ABC 정착 - 1천억 절감

유럽 미국 법제화, 일본은 자율규약 철저

'담배보다 끊기 어려운 신문', '정보산업이 아닌 광고유통업'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신문협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96년 경기도 고양에서 판촉원들간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직후 판매심의위와 공동감시기구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규약과 기구 마련에 나섰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신문공정경쟁규약 위반 사례는 97년 2,840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3,584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일선지국은 무가지와 경품을 무한정 동원해 할당판매부수를 채워야 하고, 본사는 광고수익을 위해 발행부수를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본사와 지국은 1개 신문사당 연간 1백억∼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신문판매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신문공동판매제도'를 꼽고 있다. 언론노련과 일선 신문판매종사자들이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신문불공정판매고발센터(가칭)를 운영하고 신문공동판매법(가칭) 입법청원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적극 활동을 천명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공판제는 현재 중앙일간 신문의 경우 전국적으로 1,500∼1,000여개에 달하는 일선 판매지국을 통폐합해 공동운영하는 제도이다. 예컨대 한 가정에서 신문 5가지를 볼 경우 5명이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1명이 5부를 배달하는 것이다. 판매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수 있으며 광고단가 향상을 위한 '무한발행체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또 무가지를 살포하거나 고가경품을 제공하는 등의 과당경쟁도 막을 수 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반독점법'의 정신을 위배하면서까지 신문보호법을 제정해 제작·영업과 관련한 공동경영협정(Joint Operating Agreement)을 운영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국가재정을 투입해 신문의 공동배급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은 법령으로 공동판매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들어 신문사 스스로가 경영악화와 배달인력난의 해소방안으로 공동판매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광주대 류한호 교수는 "이처럼 공판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목적은 이른바 마이너 언론들의 생존을 국가가 보장함으로서 일부 매체에 의한 여론독과점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장의 원리에 신문을 맡기고 있는 영국의 경우 독점화가 많이 진행돼 신문의 종류가 적지만,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인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신문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판제 정착을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신문협회는 지난해 11월 정기 이사회를 열어 공동판매제를 시범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읍·면 등 경제성이 없어 이미 공동지국이 형성되고 있는 지역을 시범실시 대상으로 선정, 얼마간 실시하다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한림대 정연구 교수는 한국에서 공판제 실시가 안되고 있는 이유로 '신문사 경영 관행의 고질적인 은폐주의'를 꼽는다. 즉 "유료부수가 드러나 광고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는 신문사들의 암묵적 반대"가 이 제도의 정착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교수는 "기업의 광고집행 합리화로 부수공사(ABC)제도 실시가 불가피해지면 어차피 부수는 공개될 것"이라면서 공동판매를 통한 판매비용 절감효과는 평균 34%에 이르며, 발송부수가 가장 많은 한 신문의 경우 판촉비와 무가지 등 비용절감까지 합산하면 월 10억원 이상을 아껴 월급 300만원의 기자 300여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정 교수는 오히려 "내용이 충실한 신문들의 경우 판매비 절감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 아사히신문의 경우 마이니찌신문보다 발행량이 200만부 가량 적지만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노련과 신판연이 추진하고 있는 공판제의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노력과 신문사의 자정의지이다.
신문마케팅연구소 홍원기 소장은 "일본에서도 판매를 둘러싼 살인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93년 신문사들이 '신문판매근대화센터'를 설립해 판매직원 공동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불공정행위에 대한 신문협회의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병행되는 속에서 신문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신문협회가 인력과 의지 부족으로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문사들도 출혈경쟁을 지양해 판매 정상화에 나섬과 동시에 양적 우위보다는 지면이나 논조로 자신의 신문을 특성화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과거 해외공동취재 등의 경험을 살려 공동물류, 공동판매를 실현하는 등 정부 정책과 아울러 신문사들 스스로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 정부가 나서 각 신문사들에게 공판제에 대해 설득하는 한편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즉 기금조성이나 공판회사에 출자하는 등의 형태로 공판제 참여사를 지원하는 한편 참여하지 않는 신문사에게는 기존 세제감면혜택 철폐 등의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공판제 조기정착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연구원은 지난 98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철저한 적용 △신문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특별법 제정 △부수공사(ABC) 정착을 위한 신문통계법 제정 △공판 가입사에 정부광고 부여 등의 인센티브 제공 △광고지면이 보도지면의 일정비율을 초과할 경우 부가세 및 특별소비세 부과 등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지적과 대안에 따라 많은 언론관계자들이 신문판매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단체들이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산발적인 활동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판매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현재 활동 중인 언론노련과 신판연·시민사회단체·국회·학계·신문협회 등 유관단체 모두가 역량을 모아, 공동출자 형식의 '공동판매공사' 설립을 포함한 각종 기구와 제도 마련 등에 나서야 한다.


/ 언론노보 286호(2000.7.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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