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생사조차 몰랐던 가족들의 50년만의 만남, 그 현장에서 방송을 해야 한다니. 국내는 물론 세계의 수많은 눈과 귀가 지켜보는 자리, 솔직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그러고 싶었어요. 방송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봉현장에서의 인터뷰란 욕심나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능력도 못미치는 제가 무턱대고 맡을 일은 아닌 듯 했어요.그만큼 조심스러웠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제 속마음은 알ㅇ곳 없이 하루하루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회의, 회의, 회의... 방송인들로서도 처음해보는 방송이었기에 회의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지요. 상봉현장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불가능 했으니까요.
그러면서 몇 가지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방송 4사의 동시 생방송, KBS는 100가족 중 25가족을 담당, 그 가운데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가족 위주로 주요 인터뷰 대상자도 선정됐지요.
50년만에 만나는 동갑내기 부부, 남과 북에서 서로를 그리워 했을 홀어머미와 외아들, 상봉소식을 전해들은지 사흘만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형제들만을 만나게 된 장남,...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고 어떤 소설보다 기막힌 사연들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세웠던 가장 큰 방송원칙은 '그대로 둔다'였습니다.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그 순감만큼은 방해하지 않고 가능한 한 '그대로 두기'로 한 것입니다. 눈물과 회한과 기쁨이 뒤엉키는 그 순간에 카메라와 마이크는 되도록 깊숙히 들어가지 말고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상봉현장에서 언론이 너무 호들갑스럽게 훼방놓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론 더욱 자성해야 겠지요.
커다란 방송의 원칙과는 별개로 제가 나름대로 생방송 직전에 다집했던 것은 '담담하게'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흥분하고 울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되도록 거슬리지 않게 방송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북쪽에서 온 가족들이 들어서는 순간, 그런 다짐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마치 한순간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치듯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뜨거운 기운에 휩싸였습니다. 눈물 속에 목놓아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은 물론, 그들의 모습을 담아야 하는 카메라맨과 오디오맨 역시 ENG카메라와 붐 마이크를 들고 뛰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온겨레가 가슴으로 울었던 그 현장에서 방송인들도 같은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방송을 맡게 됐을 때 가졌던 부담감은 그날 그 곳에서 눈물과 함께 스르르 흘러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 느끼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것 만으로도 방송은 술술 풀려나갔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이크 줄을 잡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카메라를 메고 함께 뛰고, 중계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던 화면 밖에서 고생하신 현장의 제작 스태프 선후배님 덕분에 무사히 방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다른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번의 미숙함을 바탕으로 다음엔 좀 더 성숙한 방송을 해야 겠지요. 이번에 만나지 못한 많은 이산가족들은 다음에, 또 그 다음에 만나도록 해야겠지요. 이번에 만나고 헤어진,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그리움에 몸살을 앓고 있을 분들에게는 가족들과의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또 다른 시작일 것입니다

이금희 KBS아나운서


/ 언론노보 288호(2000.8.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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