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의 세상시비]
지역민방, 죽으려면 지금처럼



지역방송 특히 지역민영방송의 위기는 그냥 말로만 ‘위기’가 아니다. 백척간두다. 실감나게 풀어보자. 한 척이 한 자이고 한 자가 30.3cm. 백 척이면 30미터 가량. 30미터짜리 대나무의 꼭대기에 올라 선 상태를 이르는 말이니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백척간두의 지역민방.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해체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미FTA에서 한국의 문화부와 방송위는 광고공사를 유보안에 올리지 않았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양허하기로 했고, 또 WTO DDA에서 한국의 양허안에 광고공사를 올려 놓았기 때문에 FTA에서 그냥 내 주기로 했단다.

냉정하게 물어보자. 지역민방은 광고공사 없이 생존할 수 있는가? KBS MBC SBS와 경쟁해서 광고를 유치해 올 수 있는가? 지역의 중소광고주들이 지역민방을 떠받칠 수 있을 만큼 광고비를 지출할 수 있는가? 지역민들이 지역민방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질러 줄 만큼 지역민방은 지역민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동쪽으로 봐도 서쪽으로 봐도, 위로 봐도 아래로 봐도 지금 상태로는 안된다. 그렇다고 생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역민방은 먼저 상경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외교통상부 앞에서, 문화부 앞에서, 방송위원회 앞에서 ‘복수/다수 미디어렙 도입 절대 반대’를 외치고 ‘한미FTA 저지’를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때리면 맞고 맞으면서 또 외치고 외쳐야 한다. 그들에게 민방의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 지역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국회 앞에서 자리를 펴야 한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발의한 ‘복수/다수 미디어렙 도입 법안’은 심의조차 해서는 안된다고. 그런데 지역민방 구성원들은 그냥 자기 방송사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다.

복수/다수 미디어렙 도입을 위한 수많은 논의가 십 수 년 째 있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지역방송사나 독립라디오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 논의가 없었고, 그 대안도 전무한 실정이다. 극단적인 시청률 경쟁으로 내몰 것이 빤한 복수/다수 미디어렙 도입은 말 그대로 지역방송사와 독립라디오사의 죽음이다. 설령 보호장치를 만들어도 법을 지켜 얻는 이익보다 법을 어겨 얻는 이익이 큰 구조다. 당연히 서울 방송사 미디어렙들은 법을 어겨 이익을 취하고 그 이익 중 일부를 ‘벌금’으로 낼 것이다.

한편으로 지역의 중소광고주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한데 수도권 집중정책이 존재하는 한 지역경제는 결코 흥할 수 없다. 노무현정권의 지역분권화정책이 수도권의 뉴타운 건설계획으로 종말을 고했다.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이 계획을 무산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아니 제대로 된 지역분권화 정책을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민방은 그냥 수도권의 아파트 정책쯤으로 보는 모양. 뉴스도 프로그램도 비판이 없다. 지역민방 구성원들의 위기불감증은 가히 ‘경탄지경’이다.

충성도 높은 지역시청자는 지역민방의 버팀목. 그들의 삶을 파고 들 수 있는 프로그램과 뉴스, 더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이벤트도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자사의 이니셜도 모르는 택시기사들이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태반이다. SBS를 뒤에 붙이지 않으면 모른다. 이들을 위해서 1년에 한두 번 문화교양이벤트를 마련하고, 홍보하는 것이 어려운가? 지역의 택시기사마저 지역민방의 이니셜을 모를 정도라면 이는 외부문제가 아니라 내부문제다.

프로그램을 보자. 서울의 버스나 택시를 보면, KBS MBC SBS의 드라마나 기획프로그램 광고물이 줄줄이 붙어 있다. 지역민방이 자체 제작 편성한 프로그램을 위해서 어떤 홍보활동을 펼쳤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시사교양프로그램 하나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3~4천 만 원이다. 그런데 지역민방이 만드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은 얼추 5~6백 만 원 선이다. 그러면서 ‘만들어봤자 지역시청자들이 보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말이 되는가? 10분의 1의 비용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특이한 경우 아니면 어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겠는가! 프로그램 제작비를 최소한의 수준까지 인상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지금쯤 경영진은 구성원들의 임금동결을 선언하라. 경영진들의 임금 삭감을 선언하라. 또한 흑자분에 대한 주주배당 동결도 선언하라. 임금동결분과 주주배당금을 전적으로 프로그램 제작비에 투입하라.

앉아 있다가는 죽는다. 아니 지금 지역민방은 백척간두에 앉아 있다. 바람이 분다. 이 바람에 죽을 수도 있다. 내려오기 위한 구명줄을 만들어야 한다. 외부에서 도와야 한다. 하지만 내부문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투쟁으로, 스스로의 결단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들이 할까? 죽으려면 지금처럼 하고...


// 언론노보 제426호 2006년 11월 8일 수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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