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회기사 작성법
                                                                                  11.29

“평화민중자유노동연맹은 지난 3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고, 폭력행위나 교통 혼잡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주최측 소속 간부 2천여명으로 구성된 질서 유지대가 배치됐고, 행사 끝에도 쓰레기를 말끔히 치웠다.”
앞으로 우리는 위와 같은 서술 구조의 가상 기사가 전형적인 집회보도로 자리 잡게 될지 모른다.  집회를 ‘왜’ 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이 새로운 기사작성법은 교통 혼잡과 폭력행위 수반 여부만이 중요한 요건이 된다.
또 시위대의 목소리는 철저히 시민들과 차단시키고, 특히 폭력이 있을 경우 일반 시민과 분리해 이성을 잃은 사람의 난동으로 분류시킨다.
경찰이 제공한 문건의 경우 100% 신뢰하고 진압방식은 개의치 않지만, 효과적인 진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흔들리는 공권력을 문제삼는다.
지난 27일자 조선, 동아, 중앙에서 이 같은 형식의 기사 쓰기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날 한국노총의 집회를 “평화 집회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높이 평가했다. <2만5천명 모였는데 폭력도 없고 길도 안 막혀>(중앙 12면 4단) <약속지킨 한노총>(동아 11면 3단) <평화시위 약속 지킨 한국노총>(조선 10면 3단) 등
신문 기사에서는 왜 한국노총이 집회를 했는지는 알리지 않은 채 자율적 질서유지를 위한 질서유지대 구성과 교통불편이 없다는 것에 초점이 맞췄다.
또 지난 22일 한미FTA저지 범국본의 총궐기에 대해선 교통 혼잡과 폭력 행사를 집회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 23일자 주요 신문들은 <충남도청 담장 뜯어내고 화단 불태워>(조선) <방화…폭력…전국 불법시위 ‘얼룩’>(동아) <깨지고…불타고…다치고…아수라장>(중앙) <서울선 ‘준법! 행진’ 지방선 ‘격렬충돌’>(경향) <또 무너진 ‘준법약속’>(한국) (국민) 등 온통 폭력에 초점을 맞춘 제목 뽑기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는 왜 한미FTA를 저지하려고 많은 시민들이 모였는지, 왜 농민들의 시위가 과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 경찰이 테러방지용 ‘테이져 건’을 사용한 내용이나 최루액, 소화기 난사 등 지나친 진압 행위는 누락돼 있다.  이 같은 집회기사 작성법은 지금 언론계에서 유행이 되고 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현장에 있지 않아도 경찰자료만 참고하면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집회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는 이 기사 작성법은 한미FTA가 체결 될 때까지 높은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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