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외 <미국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하는가평화와 군축을 향한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미군 철수 문제를 공론화하자누드모델 이승희 열풍에 이어 박찬호, 박세리, 김미현 등 스포츠 스타들이 미국에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있다. 요즘에도 박찬호 야구경기나 김미현의 LPGA 경기 속보가 나오면, 인터넷에서 다른 기사를 찾아보다가도 그쪽을 클릭하게 되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미국을 뒤흔들어놓는 것인가, 아니면 '식민지' 한국의 열등 국민이 '식민모국'에서의 찻잔 속의 태풍에 환호하는 것인가. 특별히 스포츠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지 않으면서도 박찬호와 김미현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을 어느순간 돌아보면, 그러한 관심의 이면에는 지구상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깊은 열등감과 흠모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사실 냉전시대 우리에게 심어진 미국의 상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의 나라요, 풍요를 자랑하는 선진문물의 나라였다. 미국이 가진 부정적인 면이나 한미관계에서 야기되는 문제점 같은 것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아름다울 미(美) 그대로 미국은 우리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아름답고 선한 나라라는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 적은 없었다. 아마 이렇게 뿌리깊은 '아름다운 나라'의 이미지에 확실하게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물론 '의식화 학습'을 통한 부분도 있겠지만, 1980년 광주학살이 미국의 묵인 방조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82년의 충격적인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접하면서부터일 것이다.{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이후)는 21세기에도 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하는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몇가지 금기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군철수 논의가 아닐까.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고, 평화적 통일의 단계적인 진전에 대한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역할과 계속 주둔 여부에 대한 공론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북한 위협론'을 더이상 명분으로 삼을 수 없게 되자, 미국은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정과 세력균형을 위해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는 중국을 주적(主敵)으로 설정하여 미·일·한 동맹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동아시아에 신냉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군철수를 거론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현정부를 어렵게 하고 보수냉전세력의 반발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공론화를 통한 '민주적 개입'과 '시민적 통제'가 절실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미군철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단선적인 주장을 펴지 않고 미국의 방위구상과 주한미군의 역할, 전시작전권 문제, 동북아의 평화 등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함을 알려준다. 제2부에서는 공개질의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서와 이삼성 박명림 이철기 이장희 김동춘 서동만 등 관련 학자들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인식을 다각도로 조명하였다. NMD(국가미사일방어체계)와 TMD(전역미사일방어체계)의 구축을 통한 미국의 패권 추구와 국제사회의 우려를 집중점검한 3부에서는 평화군축을 위한 NGO들의 연대운동도 소개하고 있다.미군철수 문제는 군사·안보 문제인만큼 시민생활과 직접 관계가 없고 일반인이 접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싸이트에 실린 글들을 토대로 한 이 책은 싸이즈도 아담하고 전문적인 서술보다 간결하게 풀어 얘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반복되는 내용이 많긴 하지만 매우 편하게 읽힌다. 사실 1945년 해방(분단) 이후 미군정 통치와 함께 시작된 미국·미군과의 인연은 우리 겨레의 삶의 방향을 뿌리부터 좌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런만큼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의미와 미국이 추구하는 안보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남북간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 실현을 위한 주체적인 노력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내디딜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미국은 언제부터 한반도와 인연을 맺어왔는가. 19세기 후반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등장한 이래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대해 미국이 어떤 정책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는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마틴 하트-랜즈버그 지음, 당대)에서 개괄할 수 있다. 박찬호의 쾌거에 박수를 치더라도, 미국의 실체를 냉정하게 응시하는 또하나의 눈을 가져야 한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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