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노조 역사, 끝까지 지킨다
■ 한국일보지부 투쟁현장을 가다



한국일보에 노조가 생긴 것은 1987년 10월29일이다. 한국일보가 첫 언론사 노조라는 명성의 흔적은 아직도 언론노조 대의원 번호 1번으로 남아 있다. 애초 한국일보라는 하나의 간판을 달고 시작했던 노조는 2000년 연봉제가 시행되면서 편집국 조합원 중 소수를 제외하고 160여명이 탈퇴했다. 700여명에 달하던 노조원은 그 반도 안되는 250여명으로 축소됐다.

2001년 파업, 장재구

2001년 노조는 비리 사주 장씨 일가 퇴진과 경영정상화를 내걸고 7월20일부터 한달여 기간동안 파업을 단행했다. 이때 한국일보는 당시 장명수 사장 명의의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경찰을 동원해 조합원의 회사 출입을 막았다. 그리고 이른바 ‘장존’이라 불리며 수백만달러의 회사돈을 빼돌려 카지노를 즐기던 장재국 회장의 홰외도박이 사실로 드러나고 현재의 장재구가 회장으로 취임한다.

2002년 9월에 채권단과 MOU를 체결하고 자금관리단이 경영개선을 위한 동의서를 요구했고 장재구 회장의 500억 출자를 전제로 노조는 동의서를 써주게 된다. 하지만 2002년말까지 출자하기로 한 그 약속은 일부만 지켜졌다. 반면 조합원들은 상습적 임금체불에 시달려야 했다. 채권단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MOU 강제이행 촉구 요구에 ‘청산 절차’를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을 뿐이었다. 결국 2004년 9월 노조는 평균 임금 17.8% 반납 및 퇴직금 중간정산을 전제로 한 퇴직금누진제 폐지를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여야 했다.

임대호의 배신

산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2004년 9월 임단협을 마치고 임대호가 10월말 다시 노조 위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2005년 한 해 동안은 임금교섭 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회사가 제작국 분사계획을 내부적으로 정하고 삼일회계법인 이름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당시 이 사실을 인지한 집행부는 임대호의 뜻과 달리 2006년 2월 상집, 대의원 수련회를 개최하고 제작국 분사 반대를 결의했다. 하지만 임대호는 회사측과 조합원 몰래 비공식적 접촉을 진행한다. 조합원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24회에 걸쳐 사측과 비공식 접촉을 가지고, 조합원 몰래 제작국 분사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동의서를 채권단에 8월22일 제출했다”고 증언한다. “동의서 제출 당시에도 분사 동의서가 아니라 기업개선 작업에 대한 동의서일 뿐”이라고 했다는 것. 이는 당시 노조 비대위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일관되게 얘기한 것이다.

임대호 탄핵과 벼랑끝 투쟁

2006년 9월22일. 사측이 사원설명회를 통해 제작국 분사와 퇴직금 출자를 통한 신설법인 설립, 인원정리 등을 일괄 발표한 이후 임대호가 속여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분노한 조합원들은 9월28일 비상총회를 소집해 임대호를 바로 탄핵하였다. 이어 지부는 본격적으로 제작국 분사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사측은 9월22일 사원설명회를 시작으로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탄핵 이후 비대위를 새로 구성하고 사측에 희망퇴직 중단과 새로운 비대위와 교섭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10월12일 한국인쇄 해산 공고, 미디어프린팅 설립 등 일방적으로 분사를 밀어부쳤다. 회사는 노조의 투쟁으로 제작국 분사의 명분이 흔들리고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자 애초 계획을 바꾸어 11월1일 06시까지 성남공장을 비우라고 통보한다. 조합원들은 새벽에 성남공장에서 비상총회를 소집하여 ‘한국일보 제작 차질’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한국일보와 노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충정으로 성남공장 사수를 결의했다.

성남공장 사수!

“37일 동안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공장사수투쟁 때문에 집에 못간 것이 제일 힘들었지”.
11월22일 이종승 사장이 성남공장을 방문해서 조합원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힘든데도 차질없이 한국일보를 잘 인쇄해줘서 고맙다, 제작국 분사를 철회할 수는 없지만 고용승계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조차 휴지조각이 됐다. 회사는 성남공장을 11월24일 휴업공고하고 식당도 폐쇄했다. 이어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세지로 공장에서 철수 안하면 손해배상, 형사처벌 하겠다고 통보했다. 성남공장에서 인쇄하던 신문은 다른 신문사로 넘어갔다. 12월6일. 노조는 성남공장 사수투쟁이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장재구 회장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규탄을 위해 투쟁 거점을 본사로 옮겨 천막농성을 하기로 결정한다.  

9월22일 사원설명회에서 사측이 발표한 구조조정 대상 인원은 총 230명이었다. 일단 모두에게 희망퇴직을 받은 후 분사회사(미디어프린팅)로 168명을 보내고 62명은 해고한다는 안이었다. 명퇴를 거부하면 우선 정리해고 대상이 되는 거고 명퇴를 신청하면 우선 취업권을 주되 취업에 관한 한 회사가 전권을 가진다는 것. 10월말까지 분사회사로 간 인원은 대략 110명 정도였다.

끝장 투쟁 위한 결단

회사는 12월1일 투쟁하던 조합원 45명을 해고통보하고 30명을 전환재배치 했다. 12월 28일 조합은 장기투쟁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석 달 동안 제작국 분사 저지와 노조 사수, 장씨 일가의 약탈적 경영에 맞서 함께 싸웠던 조합원들에게 “지금까지 싸워온 조합원 모두는 한국일보사노조가 유지되는 한 영원한 동지이다. 지금 비록 우리 힘이 미약해 끝까지 함께 싸울 수는 없지만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명퇴 신청을 공개적으로 받기로 한다. 83명 중 49명이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회사를 떠났다. 남은 34명은 장재구회장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 선언했다. 지부의 현재 조합원 수는 100여명이다.  

장재구를 구속하라

분사 이후 지부는 10여건에 달하는 법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장재구 회장의 배임ㆍ횡령 고소는 최근 서울고등법원 항고조차 기각 당했다. 10월4일 퇴직금 중간정산 청구소송 결심공판, 이희제 조합원의 의원면직 취하소송, 업무방해를 이유로 한 퇴직금 가압류(1인당 3,500만원), 형사소송, 해고무효소송 등이 진행중이다. 임대호에 대한 업무상 배임 고소는 올해 4월25일 기각됐고 7월27일 항고장을 접수했다. 언론노조에서 검찰에 제출할 탄원서 서명을 받고 있다. 소송비용도 만만치 않다. 9월22일 이후 들어간 전체 소송비용 총액은 약 1억 정도 된다. 조합원들이 받은 퇴직금 중 소송분담금을 걷어 5천만원 정도 모았고 나머지는 투쟁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해고된 조합원들 중 몇몇은 재취업, 창업을 고민하고 있지만 대부분 아직 쉬고 있는 상태다.
한국일보사의 제작국 분사와 노조와해에 맞서 투쟁하는 도중 2명의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일보 대표이사를 무시하고 장재구회장의 꼭구각시 노릇을 한 모 이사는 그 충정을 높이 평가받아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조합원의 목숨과 일터를 담보로 제작국 분사를 몰래 합의 해준 임대호는 최근 미디어프린팅 상무가 되었단다. 한국일보는 잦은 인쇄 제작 사고로 배송 지연 등 무리한 분사에 따른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한국일보의 제2창간을 위해 끝까지 투쟁을 결심한 100여명의 조합원은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선봉노조의 부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다”.


// 언론노보 제440호 2007년 9월 12일 수요일자 2면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