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노동자통일대토론회에 다녀와서12월 12일 아침 8시 반. 남북노동자통일대토론회의 남측 대표단을 실은 배는 북한의 장전항에 도착했다. 북한 땅. 북한 사람들. 새로이 감회가 밀려왔다. 민주노총 축구단의 일행으로 북한을 다녀왔던 일부 동지들은 북한에서 환영나온 직업총동맹(북한의 노총) 대표들과 얼싸안고 반가움을 나누었다. 남북대표들간의 토론은 숙소인 금강산려관에서 열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북한의 직총이 함께 참여하는 토론회는 진행부터 꽤 긴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다. 2박 3일의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진행을 준비하는 3단체 실무자들의 모임인 운영위원회가 길게 늘어지는 일이 많았다.각각 나름의 특색을 갖는 3단체가 입장을 조율해나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12일 오후 2시 20분. 역사적인 남북노동자대표단간의 통일대토론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북노동자들간의 활발한 통일토론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2시간여동안 이어진 이 날 토론은 각 단체에서 미리 준비해 온 토론문을 낭독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만큼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민감한 부분이 많았던 주제였고,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들도 베어 있었다. 3단체가 준비한 토론문은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7.4공동성명 때 합의한 자주와 평화, 그리고 민족대단결의 원칙하에 통일을 이루자는 것, 그리고 잦은 접촉을 통해 서로의 벽을 허물어 가자는 것이 3단체 토론문의 큰 줄기였다.큰 틀에 있어서 차이가 없는 남북대표들은 그러나, 세부실천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벌였다. 특히 각 부문별 자주교류사업에 대한 입장을 서로 현저하게 달랐다. 언론노조을 비롯한 민주노총대표들은 각 부문별 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측은 지극히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북측은 남측대표단 가운데 양노총위원장이 포함되지 않아 책임질만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북측이 중앙단위가 아닌 산별이나 지방단위의 교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부문별 지역별 자주교류는 향후 과제로 넘기고 중앙차원의 교류를 계속 벌여나간다는 수준으로 의견을 모았다.14일 아침. 장전항까지 가서 금강산도 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떠나와야 하는 시간. 북측은 우리 대표단을 위해 환송공연을 열어 주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남과 북의 대표단은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늘어서서 공연장을 뛰는 통일기차놀이를 하며 함께 어우어졌다. 북측 노동자대표들이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껴안아 올 때는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약간의 겉차림새를 젖히고 나면 정말 우리와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는 동포들. 그러나 떨어져 살아 온 세월 50년은 첫만남부터 많은 성과를 내기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정병준KBS본부, 남북노동자통일대토론회 대표/ 언론노보 296호(2000.12.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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