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자유주의 자본국가 시대, 언론노동자/언론노조의 진로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공대위 투쟁과 함께 언론노조 여러분과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청 높였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비준 이후는 좀 제대로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본격적 신자유주의 ‘개방’, ‘민영화’, ‘탈규제’의 뻔한 공세에 맞서 우리 내부를 좀 단도리하고 싶었었습니다. 방송 공공성과 언론 자율성, 문화 다양성 위협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내자. 노동의 위기, 삶의 위기, 사회의 위기를 미디어운동 쪽에서부터 막아내보자. ‘공공성'을 화두로 제시하고, ‘반공공적 권력 대 공공적 역능’의 전선을 설정코자 했습니다. KBS가 내놓은 졸속 수신료 인상안의 실질적 대안을 고안했고, MBC가 주도한 중간광고안의 성급함을 시비했으며, 방송위원회의 무능을 질책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무관심과 분열, 그리고 적대. 운동의 힘은 재차 쪼그라들었고, 연대는 다시 흐트러졌습니다. 언론노조는 보기 민망할 정도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이런 무력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맞이했습니다.

놀라운 사건이 아닙니다. 한나라당 정권의 등장과 자유무역체제의 구축은 서로 떼어질 수 없는, 밀접히 연동된 동시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선택된 게 아닌, 자본의 욕망에 따라 선발된 게 맞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노 정권의 선택인 듯 보이지만, 기실은 자본의 결정이었듯이 말이죠.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전력한 전경련과 재벌, 수구신문, 그리고 수천 ‘전문가’들의 동맹관계를 따져보세요. 이들은 결코 ‘국민의 이익’을 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궤적에 비춰보자면, 어정쩡한 노정권 이후 명징한 이명박 정권의 출현은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자칭 ‘좌파신자유주의 정권’을 발전 계승한 ‘우파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완성. 기업=재벌=자본의 천국. ‘불법시위’가 ‘근절’되고 ‘기초질서’가 확실한 우리나라 좋은나라. ‘작지만 강한 정부’. 이 모든 게 지금부터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계속될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참모습이지요.

자본의 이익관철이 곧 국가의 우선과제인 그런 시대가 열린 겁니다. 자본의 이윤 확대를 위해서라면,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공적 부문까지도 과감하게 (독점)시장에 내놓습니다.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절대선이기 때문입니다. 철도와 수도, 교육, 의료, 이 모든 걸 개방해야지요. 그래야만 ‘경쟁력’과 ‘효율성’이 강화되고, ‘소비자 선택권’이 증진된다는 겁니다. MBC와 KBS-2TV의 민영화,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허용 등 대통령 인수위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도 그렇습니다. 모두 한미FTA 당시 미국이 말했던 것, 재벌이 원했던 것, 수구매체가 속내 드러낸 것들이죠.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눈치보며 미루었던 작업들을 좀더 체계적이고 뻔뻔한 방식으로 실현시킬 것입니다. 일방주의와 포퓰리즘에 기초한 매우 조직적이고 현혹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그러니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 떨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실체와 실태를 정확히 간파한 상태에서, 제대로 준비된 담론과 동력 동원의 전략/전술에 기초해 핵심 포인트를 전취해 가야합니다.

지속 강화될 자본/권력의 위세와 이에 따른 언론/자유의 침체에 비춰보자면, 선거 직후 노골화된 수구신문의 작태나 KBS, SBS 등의 기회주의 처신은 기가 차지만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선전과 검열, 거짓과 왜곡의 모습은 신문과 방송, 공영과 민영 가릴 것 없이 구조화 될 것입니다. 이를 대비하는 게 우리에게 위임된 책무입니다. 기발하고도 강력한,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와 통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가령 여러분 모두가 매달 1만원씩을 활동가 후원금으로 내놓는거죠. 그런 다급한 상황입니다.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연대를 복구해야 하고, 미디어 안팎의 인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긴밀한 형태로 교류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닌 자원과 채널, 기술을 적재적소 기민하게 배치 활용할 계획을 함께 고안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에 수렴되지 않은 노조와 시민사회, 학계의 진보적 섹터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고한, 평등한 형태로 '조합'하는 것 외에 대안은 없습니다.

혹 ‘과격한’ 운동진영과 손잡아 손해보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대충 가보자는 생각이 드나요? 회사 이익을 위해 사주와 머리를 맞대는 게 급하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경영진을 어떻게 퇴진시킬지 고심하고, 임금이 왜 이만큼만 인상되었는지 푸념하고 계신가요? 그걸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일자리는 차치하고, 방송 공공성과 언론자유, 사회 진보는 그런 저열한 마인드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수신료도 7,000원으로 대폭 인상시켜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교차소유, 종합편성채널은 또 어떻고요? 그렇지만 말하지 않은 ‘전제조건'을 따져보세요. 그렇게 순진한 신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이윤을 위해 과감히 인간을 버리고, 상품을 위해 당당히 공론을 포기하는 게 자본국가의 속성입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전례가 그러했습니다. 비상한 시기는 비상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자본/국가의 동맹에 맞서, 언론/사회의 통로를 티우는 게 살길입니다.

조직된 신체, 예리한 언어, 훈련된 기술의 무기가 있습니다. 말발, 글발, 얼굴발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기자와 피디, 기술, 행정, 가릴게 어딨나요? 자기 조직화의 노력없이는 아무도 우리를 인정하거나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인심, 민심은 그렇게 냉정합니다. 이기적 처신을 청산하고 혁신된 면모를 내놓아야 합니다. 겸손하고 진지하게 사회와 함께할 새로운 미디어운동양식, 새로운 언론연대활동을 구상하는 게 생존의 길입니다.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시대가 아무리 오래 지속되도 사회적 표현의 숨통을 완전 압살하지는 못합니다. 그 구멍 역할을 맡으시겠습니까? 발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침묵을 지키겠습니까? 권력과 제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보통사람들과 교제하시겠습니까? 사회의 기대에 승복하는 언론노동자, 사회의 희망을 창의하는 언론노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투쟁 기억이 미래의 역사로 지속되길 기대합니다.


전규찬
영상원 교수,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 언론노보 제447호 2008년 1월 9일 수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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