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언유착이 기형적 신문시장 원인족벌개혁은 소유구조 분산에서 출발오늘날의 시대정신은 개혁이다. 그것은 정치-경제-사회개혁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를 이룩하는 일이다. 구질서의 적폐를 혁파하고 신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런데 언론이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객체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구시대로 회귀하려는 몸짓을 한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언론개혁을 외치는 것이다. 언론계의 입장에서는 내부의 모순을 교정하라는 외부의 도전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언론계는 눈귀를 막고 듣도 보도 못한 척한다. 언론계가 무반응으로 나오자 초기에만 해도 자율개혁을 운위하던 집권세력이 언론권력의 위하에 눌려 함구하고 있다.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벌써부터 개헌론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면 대선이라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의식이 결여된 정치권력에 의존하여 제도개선을 통한 언론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망한 일인 듯싶다.언론계가 언론개혁을 외면하지만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에서 그 절박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뉴스 수용가들이 좀처럼 보도내용을 액면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기사 뒤에 독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수준이 우려할 만하다. 언론이 오랫동안 정치권력-경제권력의 의도에 따라 기사가치를 왜곡-변질시켜 왔다는 뜻을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잘못된 보도자세를 교정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언론개혁시민연대와 한국기자협회가 신문-잡지기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응답자의 93.5%가 정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4.3%에 불과했다. 정간법 개정안은 소유구조 분산과 편집권 독립을 골자로 하고 있어 절대다수의 기자들이 언론개혁의 정당성-당위성에 대해 찬동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현업종사자의 의지를 응집시키는 작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신문개혁은 소유구조의 분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벌신문이 모재벌한테서 독립했다지만 소유구조가 여전히 독점적이다. 지방신문을 포함한 족벌신문도 창업자 일가 및 그 영향하에 있는 재단이 소유하거나, 지배주주 및 그 관계인이 소유한 형태로 되어 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신문사의 소유구조는 사실상 1인지배체제이다. 언론사의 독점적 소유구조는 사주의 가치관이 여론지배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사회구조가 다기화하고 있어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소유구조는 소수에 집중되고 그것이 또 소수에 의해 상속되니 기득권을 보호하려고 사회변화를 거부한다. 개혁작업이 번번이 좌절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여론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신문사들이 의제여론(pseudo opinion)를 조성함으로써 개혁의 당위성을 호도하여 개혁에 저항하는 것이다.32년간이라는 정치군인의 장기집권도 언론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론이 군사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고 나서 장기집권의 도구 노릇을 했던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를 묵살함으로써 군사정권의 영속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언론이 정치권력의 통제에 따라 체제공고화를 위한 여론조작에 앞장 섰던 것이다. 그 대가로 언론은 거액대출, 조세특혜와 같은 부당이득을 향유하고 편집간부는 정-관계에 진출하여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그래서 권력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편파보도를 서슴치 않는다.1인지배체제의 기업주는 태생적으로 노동조합을 독점적 소유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적대적 감정을 갖는다. 그래서 언론이 노조활동을 상습적으로 매도한다. 노동현장에서 집단해고가 자행되고 폭력적 탄압이 난무해도 몰라라한다. 다만 의사표시가 과격하면 그것만 트집잡아 과장한다. 왜 파업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족벌신문이 기득권층의 선전도구로 전락하다 보니 농민을 비롯한 소외계층의 고통을 들은 척도 않는다. 개방농정에 따라 농촌경제가 붕괴하고 있다. 무엇을 심어도 무엇을 키워도 빚만 쌓인다. 거대자본-외국자본이 유통시장을 장악했다. 소상인들이 존립기반을 침탈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곳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본-지식-정보에서 열위에 처한 계층이 잠재적 실업군으로 전락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소외계층은 여론환기를 위해 집단행동에 의존한다. 편향보도가 사회통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금융차입에 의존한 증면경쟁-부수확장으로 일부 신문사는 사실상 지급불능상태에 빠졌다. 파행적 확대경영의 결과는 참담하여 금융부채로 연명하는 실정이다. 정책당국이 채권자적 입장에 있어 경제정책을 비판할 처지가 못된다. 언론의 감시-견제기능이 마비되니 정책당국과 채권은행이 언론의 성역으로 자리잡았다. 공적자금의 유효성-투명성을 따지지 못한다. 결국 정책실패는 국민부담으로 전가된다.한국신문의 수입구조는 기형적이다. 광고수입이 매출액의 70~80%나 차지하여 광고주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광고주의 이익과 배치되는 기사는 축소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그 반대는 부각시킨다. 결과적으로 경제정책을 재벌 위주로 유도한다. 소비자 사회가 도래했지만 산업정책이 공급자 위주로 수립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광고주의 보도내용 통제는 재벌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정책을 오도하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신문경영이 광고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고용불안이 만성적이다. 광고시장의 호황-불황에 따라 증면-감면을 반복하고 여기에 따라 고용인력을 조정한다. 노동환경이 극도로 열악해졌다. 업무량이 과중하여 심층보도나 정밀해설은 엄두도 못낸다. 기자의 전문화는 말할 것도 없다. 고용불안이 심화됨에 따라 1인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 노동조합의 조직기반이 취약해져 사주의 경영권 전횡을 제어할 장치가 무력화됐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구심점을 상실한 상황이다.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사회적 저항을 유발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언론권력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권력화를 막아 공정보도, 진실보도를 실현토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실체화하고 있다. 신문개혁을 외치는 시민사회의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짖지 않는 파수견을 지키려는 파수견이 태어난 것이다. 김영호 언개연 신문개혁위원장/ 언론노보 297호(2001.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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