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진눈깨비 흩날리던 정초의 일기처럼 언론노조의 새해는 저기압으로 열렸다. 덕담을 건넬 겨를도 없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CBS의 문제를 서둘러 꺼내야 했으므로.엊그제 2000년 12월 30일 오후6시 CBS 권호경 사장은 민경중 노조위원장과 김준옥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파업 85일 만이며 서울지방노동사무소의 주선으로 협상을 재개한지 열흘만의 일이며, 노사의 막판 임금협상이 좌절된 지 30분만의 결정이었다. 이틀 전에는 CBS '시사자키' 진행자 정태인 씨를 교체했다. 그는 방송사 내부문제에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다.사장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며 퇴진을 외치는 노조 집행부의 등 뒤에 비수를 꽂고, 고언을 쏟아내는 어느 목구멍에 재갈을 물리는 CBS. 암울했던 시대, 폭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곧은 소리를 토해내던 CBS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물며 방송위원회가 CBS사장 앞으로 파행방송에 대한 경고 공한을 보내 "방송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무엇이 권 사장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69년 신학대학 졸업 후 사회운동에 투신하여 73년 내란예비음모죄, 74년 긴급조치위반죄, 그리고 75년 해외 선교비를 구속학생의 변호사비로 지출하여 배임죄로 투옥됐던 권호경 씨의 젊은 날은 한낱 꼭둑각시의 광대놀음이었던가. 오늘에 이르러 일개 정치목사 한사람이 46년 CBS 정신을 무참히 짓밟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하며, 그의 퇴진만이 CBS를 정상화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한다.이승철 기자/ 언론노보 297호(2001.1.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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