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사를 풍미한 위대한 경제학자인 조셉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문했습니다."자본주의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그는 1942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의 서두에서 명료한 답변을 던집니다. "아니다. 나는 그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슘페터 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도 케인즈도 그리고 최근에는 조지 소로스까지도 각자 그 이유는 다르지만 자본주의의 장래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명실상부한 자본주의의 패권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숫자 놀음이긴 마찬가지지만 올해가 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진짜 첫해입니다. 올해부터 21 세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작년의 호들갑으로 이미 식상한 인사가 됐지만 새 세기의 새해를 맞아 전국의 1만 7천 언론노련 조합원 동지들 그리고 1만 3천 언론노조 조합원 동지들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자본주의적 질서의 일부분인 소위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권력이 다른 모든 권력들을 대치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장'이라는 새로운 권력 뒤에는 이윤과 경쟁, 효율 그리고 '모든 사람은 혼자'라는 개인주의 등등의 새로운 가치들이 강압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가치들은 우리들에게 비교적 낯선 것들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교육받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온 기존의 가치관들과는 상당 부분 배치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을 혼자 끌어안고 죽는 행위는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될까요? 또 직장에서 윗사람을 예우하는 행위는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될까요? 자신이 선택한 직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면서 경쟁사의 스카웃 제의를 마다하고 낮은 임금을 감수하는 행위는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디스사에 의해서 최하의 신용등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빌리지 못할 것이고 사장으로부터 배척될 것입니다.이런 가치체계의 변화는 장차 우리 문화 전체, 더 나아가 우리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인간형 자체를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각 개인에게 탐욕스러운 심성을 배양함으로써 경쟁을 극대화하고 그로부터 최대의 이윤을 얻으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우리들에게 탐욕스러운 심성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가 수 천년 살아온 고전과 교양, 공동체적 미덕, 도덕 체계, 전통 등등이 앵글로-색슨적 천박스러움 앞에 하루아침에 그 빛을 잃고 있습니다.언론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이라는 이름의 질서에 편입돼 가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시장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입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사고 방식이고 전래의 가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언론노조는 불가피하게 '시장과의 전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시점에서 시장 논리의 도입을 막을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언론이 이윤의 수단은 아니며 분명히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는 우리들의 이념만은 지켜내야 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조합원 동지들께 무거운 얘기를 꺼내게됨을 사과 드립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언론계 전체에 또 다시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산별노조를 만든 정신으로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이 고비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언론노보 297호(2001.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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