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워온 역사와는 전혀 다른화랑들의 근친혼 처첩관계 등충격적 내용 담겨이종욱 지음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김영사)고대사학자인 이종욱 서강대교수의 근작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이야기』. 저자가 "학자적 생명을 걸고 썼다"는 이 책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다분히 문제적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바탕으로 신라인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 본 이 책이 왜 문제적이란 말인가. 이 책의 자료가 된 『화랑세기』 필사본이 진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다 그 내용 또한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문장가 김대문이 7세기말 편찬했다고 하는 『화랑세기』. 『삼국사기』 등에 그 존재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실물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필사본은 발견됐다. 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32쪽 짜리와 1995년 공개된 162쪽짜리 필사본 두 가지로, 1930∼40년대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일하던 박창화라는 인물이 원본을 베껴 적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화랑세기』 필사본이다.『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은 말 그대로 놀라움 그 자체다. 540∼681년 화랑의 우두머리였던 풍월주 32명과 그 주변의 남녀관계 근친혼 처첩관계 등이 주요 내용. 다른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필사본은 아직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다. 현재로선 위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적지 않은 고대사학자들은 "여기 묘사된 성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문란한데다 다른 역사적 기록과 다르다”면서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위작론자들은, 이교수가 위작인 필사본을 토대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이교수는 이렇게 반박한다. “기존의 선입견인 유교적 시각으로 신라의 성문화를 바라봐선 곤란하다. 신라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화랑을 순국무사(殉國武士)로만 보는 도식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2차 사료인 『삼국사기』와 다르다고 해서 위작이라고 보는 것도 잘못됐다. ” 그렇다면 이 책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이야기』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화랑과 그 주변의 복잡한 성 이야기들이 대부분. 가령 이런 식이다. ‘신라 사람 미생은 색을 탐해 돌아다니다 당두의 집을 찾아가 그의 처와 관계하곤 당두의 처를 첩으로 삼고자 집으로 불렀다. 그러자 미생의 누나 미실이 이를 알고 미생을 나무랐고 미생은 여인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여자가 미생을 잊지 못해 스스로 미생을 찾아왔다. 여인은 미생의 아들 셋을 낳았고 이들을 당두의 아들로 삼으니,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아름답다 하였다.’이것이 과연 아름다운 행동인지, 읽는 이를 당황스럽게 한다. 마복자(摩腹子) 제도라는 것도 놀랍다. 마복자란 부하가 임신한 자기 아내를 상관에게 바친 후 태어난 아들을 가리키는 말. 이런 제도가 신라에 있었다니…. 이러한 신라인의 성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 이에 앞서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위 여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독자들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당황스럽다는 사실은 이 책이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인 이교수는 학자적 생명을 걸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진작이다", "위작이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현재로선 절대 금물이다. 『화랑세기』 원본이 발견되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그게 어디 사람의 뜻이겠는가. 역사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화랑세기』 논란은 잘 보여준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기자)/ 언론노보 298호(20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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