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통이 큰' 관료들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 정보통신부 관리들이었다. 그들이 3년전인 지난 1997년, 한국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방식'을 미국식 ATSC로 결정했을 당시 이 방식은 시제품조차 나오지 않았다. 만약 어떤 자동차 판매회사가 여러 세계적 자동차들이 개발 중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꿈의 월드카' 예비 카다로그만 보고 시제품도 나오기전에 그중 한 자동차 메이커와 대량구매계약을 맺었다면 우리들은 그 회사 경영진을 '골이 빈' 사람들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한데도 한국 정통부 관료들의 97년 디지털방식 조기선정은 이와 닮은꼴이었다. 그때 미국의 이른바 '꿈의 HDTV - ATSC'는 아직 실험실에 있었던 것이다.3년여가 지난 2001년 초 현재 시제품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전송방식모델은 미국의 ATSC, 유럽의 DVB -_T, 일본의 ISDV- T 3가지 인데 그중에서 일본방식은 유럽방식의 아류인 만큼 크게 나누면, 미국방식과 유럽방식으로 대별된다.그런데 한국국민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거의 전세계의 추세가 유럽방식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방식과 유럽방식을 놓고 자기 나라에서 직접 비교테스트를 해본 아시아, 남미의 여러나라가 다투어 유럽방식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미국방식선택으로 기울었던 극소수의 몇나라 즉 한국, 카나다, 대만 가운데서도 카나다, 대만은 비교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고 미국 FCC내에서도 현재의 미국방식의 결함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세계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정통부는 지금도 왜 막무가내로 미국방식을 고수하겠다고 하는가. 한국 지상파 방송들이 현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전송방식으로 바꾸어 나가는데는 앞으로 10년간 국민들이 최소한 60조원 이상의 비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해야 하는데도 말이다.뒤늦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 지난 2000년 8월 결성된 '디지털방식 재검토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의 방송현업인 및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미국방식과 유럽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우수한지, 양쪽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한반도와 같은 지형에서는 어느 방식이 더 적합한지, 국민적 비용과 부담은 어느 방식이 더 덜드는지를 이땅에서 현장테스트를 통해 검증해 보자는 것이다.이 비교테스트에 드는 비용은 5억 원에서 15억 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하며 기간은 최대 반년이면 된다고 한다.이 간단명료한 요구에 대해서 정통부는 왜 줄기차게 '마이동풍(馬耳東風)'인가, 중국 당(唐)대의 시성(詩聖) 이태백의 시에서 유래했다는 '마이동풍'은 좋은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우리 4천만 국민들의 시청자주권과 온 국민의 호주머니와 직결되는 이 디지털 전송방식 선정문제에 있어 우리 국민들은 언제가지 '말의 귀'를 가진 관료들을 안고 가야 하는가. 정통부는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현장비교테스트에 나서라.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현재의 방송위원회 주관 비교테스트 논의에서 테스트 실시 반대입장을 철회하고 테스트에 동의하기 바란다.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언론노보 298호(2001.1.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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