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차원(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시대는 여전히 암울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갖가지 정책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자의적 해석과 남용으로 국민의 기본권은 말살되고 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을 향한 주도면밀한 해체작업도 진행형이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음껏 슬퍼할 수도 마음껏 욕지거리를 할 수도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던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을 막아선 경찰은 방패와 곤봉으로 민주주의 시계를 멈춰 세웠다. 역사와 문화는 청계천 벽화와 길거리 응원에서 단절된 채 박제가 되고 있다.

반면 MB 악법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 정비사업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언론악법 처리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종편 PP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도 멈추지 않고 있다. 야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느라 분주하다. 모든 걸 걸고 싸우는 민중과 달리 정치권은 득실을 따진다. 의원 뱃지를 던져서라도 악법을 막아야 한다는 민중의 요구에 미적거린다. 그저 “미디어법은 이미 폐기된 법”이라는 정치적 선언 하나로 챙길 것 챙겨보겠다는 심사가 읽힌다.

광장은 곧 촛불이다. 촛불은 민심이다. 하지만 촛불이 광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시민이 거리에 나와 할 말을 하지 못한다. 불이 필요하다. 만 2천 언론노조 조합원이 이제 프로메테우스가 돼야 한다. 언론이 프로메테우스를 자임하지 못한다면 존재가치를 잃고 만다. 후에 카프카스의 바위에 묶여 고초를 당한다 한들 불을 가져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프로메테우스가 돼야 한다. 고통 속에서 회한이 엄습한들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프로메테우스가 돼야 한다.

저항은 자기 존재를 찾는 일이다. 연대하는 저항은 시대정신을 체득하고 확산한다. 그래서 저항은 숭고하다. 평생 굴레를 짊어지고 코뚜레에 꿰인 채 살아갈 순 없다. 고삐를 쥔 자의 자비만 구걸해서는 굴종의 삶을 피할 수 없다. 함께 저항하지 않는다면 결과를 공유할 명분도 없다. 국민을 포박한 독재 망령의 존재를 눈감고 부정한들 없어지지 않는다. 제풀에 겁먹고 주눅들 필요도, 혼자 맞서겠다는 오만도 필요 없다. 함께 광장에 나서 불을 지피자. 내 마음의 영토에서 순종과 복종의 잔재를 걷어내자. 마음의 촛불을 광장의 촛불로 번지게 하자. 광장의 촛불로 언론악법을 태워야 한다.

대운하는 물길이요, 뱃길이다. 소통은 마음길이다. 뱃길은 원하지만 마음 길은 거부하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게 돌려줄 것은 불길뿐이다. 민중의 가슴과 손에서 활활 타오는 불길을 만 2천 조합원이 댕겨야 한다. 21세기 프로메테우스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지키는 불을 가져와야 한다. 한자리에 모인 낱낱의 불이 방패 뒤에 숨은 어둠을 몰아낼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 언론노보 제466호 2009년 6월 12일 금요일자 2면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