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 민실위 보고서>

삼성을 비판하는 대학교수의 기명칼럼이 경향신문에 실리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조차 거리낌 없이 비판해온 경향신문인지라 더욱 충격적이다. 삼성이라는 경제권력이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보다 더 막강해져 이제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 됐다는 반증임과 동시에 이 땅의 독립언론이 실제로는 얼마나 종속적인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과 한겨레 두 신문이 지난 2년간 얼마나 힘든 상황을 겪어왔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부 광고는 이른바 조중동에 점점 더 편중되고 있고, 이 두 신문에는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으로부터는 괘씸죄에 걸려 광고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권력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령을 꿋꿋하게 지켜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삼성과 특수관계인 중앙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 동아, 매일경제, 심지어 무가지로부터도 광고를 거절당했다. 놀라운 것은 보수성향의 언론 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조차 광고단가를 이유로 광고를 싣지 않았다. 경향신문에서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삼성 비판 칼럼 삭제 파문까지 터져나온 것이다.

비록 편집국장의 독자적인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광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그런 판단을 내린 만큼 광고주인 삼성과의 관계가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 삼성에 관해서만큼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든 제도권 언론에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부패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적반하장식 발언을 해도 대부분 언론은 단순 전달에 그칠 뿐이다. 경향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판의 펜대를 휘둘러왔다 하더라도 이번 칼럼 삭제는 그 도가 지나쳐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실망감 속에서도 희망이 엿보인다. 경향신문 막내기자들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견제되지 않는 황제로 자리잡은 삼성과의 불화는 언론이 존재해야 할 첫 번째 이유라고 역설했다. 경향신문 기자협회도 “자사 이익을 위해 왜곡을 일삼는 일부 언론과 독립언론 경향신문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고, 노조는 앞으로 기자들의 결의를 지면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경향신문의 보도를 지켜볼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막내기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대통령은 조지면서도 삼성은 건드리지 못한다면 독립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다. 삼성이 2년 만에 경향과 한겨레에 광고를 정상적으로 재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언론 길들이기 차원의 광고 탄압이 종식된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반대로 이번 칼럼 삭제와 같은 광고 종속이 재발될 위험성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경향신문 기자들의 결의에 더욱 기대를 건다.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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