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본부 조합원들에게 띄우는 편지

새봄에,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립니다.
눈 감기고 귀 막히고 목소리 짓눌린, 가위 눌린 언론을 일으켜 세울 희망입니다.
세상은 이를 ‘KBS 새 노조’라 부릅니다.
수난의 한국 언론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빼앗긴 국민의 방송을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린 장정(長征).’

그러나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전경버스가 사슬처럼 휘감고, 더러운 군홧발이 짓밟던 이곳은...
길의 끝입니다. 길은 여기서 멈추었고 앞은 사나운 가시덤불입니다.
두려움을 자르고 한 줄 저항의 노래를 떠올립니다.
‘지금 길의 끝에 서 있다면, 그건 우리가 제대로 걸어온 것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우리가 걸을 길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거짓의 길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새 길을 만들어 나갑시다.
오늘 이 희망을 가슴 깊이 품고, 빼앗기지 않는다면, 마침내 이 길은 더 큰 길로 이어질 것입니다.
손발이 터지고 찢겨 피눈물로 닦여질 이 길을, 우리가 편히 걸을 기회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택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뒤를 이어 이 길을 밟을 언론노동자들이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 이 글은 KBS본부 출범 특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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