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민실위 보고서>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 광고 카피가 아니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놓고 정부가 국민에게 강요하는 말이다. 묻거나 따지면 어떻게 되는가? 법회에서 “천안함 조사 결과를 못 믿겠다”고 말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이정희 의원은 ‘천안함이 분리되는 순간의 열상감지장비(TOD) 동영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가 고소를 당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군의 조사 과정과 발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해온 신상철 진상조사단 민간위원도 마찬가지로 고소를 당했다.

언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군 당국은 천안함 사고 원인과 구조, 인양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거나 군을 비판한 언론들에 대해 무더기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사건 초기에 미군 오폭설을 보도한 기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다. ‘해군이 구조를 제대로 못했다’ ‘은폐나 왜곡으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등의 내용을 다룬 다른 언론사 보도 8건도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했다” “의도를 갖고 썼다”는 이유로 정정보도 신청이 제기됐다.

사회 저명인사와 전문가들이 군 당국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발표 내용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그런 기사를 쓴 근본 원인은 군 당국이 ‘기밀’이라는 미명 아래 정보를 숨기는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취재기자가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겠지만, 동시에 군 당국의 거짓말과 정보 통제가 이런 보도를 양산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TOD 동영상만 해도 그렇다. 군은 그동안 몇 차례나 ‘더 이상의 TOD 동영상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추가 동영상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기자협회, PD연합회, 언론노조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 76.5%가 ‘군이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군은 반성은커녕 고소고발로 대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는 이같은 고소고발의 남발을 ‘적반하장’이라 규정한다.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경기지사 후보측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언론사 2곳을 고발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는 괜찮고 불리한 조사만 고발한 것은 누가 봐도 ‘언론 길들이기’ 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안팎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2010년 정례보고서 발표 때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최근 방한한 프랭크 라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사 기소가 많아졌다”면서 “과도한 기소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평가했다. 이런 지적에도 정부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단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정부 발표대로 보도하지 않고 의혹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채찍‘과 ‘당근’을 이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권력의 속성이 변하지 않듯이,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언론의 저항도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권력이 주는 대로 받아쓰는 언론이 아니라, 권력의 말을 항상 의심하고 묻고 따지는 언론이다. 아무리 고소고발을 남발한다고 해서 언론의 본령이 흔들릴 수는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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