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베르트 레버르트·슈테판 레버르트의 『나치의 자식들』부자(父子) 저널리스트의독일전범 취재 기록한 부류는 속죄의 길을 가고또 한 부류는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되풀이세상은 어수선하고, 사는 게 꽤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말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중국의 강대국화 등등 주변을 둘러보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대체 한국은 내게 무엇이고 역사는 내게 무엇인가. 『나치의 자식들』이라니,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곧바로 '친일파의 자식들'이란 말이 연상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또 얼마나 무관심했던가.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믈러, 한스 프랑크, 마틴 보르만, 폰 쉬라흐, 헤르만 괴링 등 이름만 들어도 섬칫한 나치의 일급 전범들. 그들의 자녀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을까. 생각해보니, 정말로 궁금한 것들이다. 이 책이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두 명의 저자는 독일의 부자(父子) 저널리스트. 아버지인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는 1959년 전범 자녀들을 최초로 만나 취재했다. 그리곤 그 내용을 한 잡지에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까닭에’라는 제목으로 1년 동안 연재했다. 나치의 자식들의 다양하고 충격적인 삶을 접한 독인 사회는 말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무관심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41년 뒤인 2000년. 아들 슈테판 레버르트는 아버지의 원고를 읽고 아버지가 취재했던 나치 전범 자녀들을 다시 취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 그리곤 취재에 들어갔다. 이들 부자 저널리스트의 취재 기록을 모은 것이 바로 『나치의 자식들』이다. 이 책은 우선 흥미롭다. 나치의 자식들의 삶을 속속들이 보여준다는 기획의 독특함, 부자 저널리스트가 썼다는 점 등등. 실제 읽어보면 내용도 재미있고 시종 박진감 넘친다. 그러나 단순한 흥미를 넘어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나치 자녀들의 삶은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나치의 자식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해 나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속죄와 자학의 길을 걷는 것이다. 전자의 삶은 별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의 삶은 비극적이다. 읽는 이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묘한 감동을 준다. 한스 프랑크의 두 아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그들의 속죄와 자학의 삶은 소름끼칠만큼 끔찍하다. 큰아들 노르만 프랑크는 아버지의 처형(1946년) 이후, 방황과 고뇌를 거듭했다. 그는 자녀도 낳지 않았다. 프랑크란 이름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할 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 그는 1980년대 충격적인 고백을 담은 책을 냈다. 나의 아버지, 나치의 살인마’란 제목의 이 책에 그는 ‘아버지가 처형당한 날이면 나는 아버지 사진 위에서 수음을 한다…아직도 꿈 속에서 집단수용소의 시체더미를 본다…아버지는 비겁하고 부패했으며, 권력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였다’고 기록해놓았다. 충격이고 비극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그토록 저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신병 치료를 받아 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지랄같은 세상의 모순인가. 너무 끔찍하다. 저자의 말대로 '그들과의 만남은 소름끼치는 체험의 연속’이다. 이 화사한 봄날, 나에게 묻는다. 내가 만일 친일파의 자식이었다면…. 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기자)/ 언론노보 302호(2001.3.2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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