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편지]

조합원 동지 여러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계절은 병아리 눈물만큼만 가을 맛을 보여주더니 어느새 겨울로 줄달음질 치는듯합니다. 2007년부터 맞아온 칼바람의 기억에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올겨울도 어김없이 거리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지부장, 본부장들을 통해 이미 소식을 접하셨겠지만, 언론노조는 지난 10월 6일에 24차 중앙위원회와 14차 임시대의원회를 열어 올 한 해를 마무리할 투쟁계획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타임오프제> 강행으로 노조와해를 꾀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의 시도를 분쇄하기 위해 조합비 인상을 결의하였습니다.

먼저 투쟁계획으로는, <대(對)정권, 대(對)자본 언론독립선언>을 올해의 마지막 투쟁목표로 세웠습니다. <대(對)정권, 대(對)자본 언론독립선언>은 지난 2년간 영일 없이 펼쳐온 언론장악 저지투쟁을 ‘2011년 언론탄압 정권 심판, 언론독립 쟁취 투쟁’으로 이어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장기파업 이후에도 공영방송독립 전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KBS본부와 MBC본부, 대주주의 방송사유화 저지 깃발을 세운 SBS본부, 공정방송 쟁취와 해직자 복직을 위해 2년 반을 쉼 없이 달려온 YTN지부가 선두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신문시장정상화 법제투쟁>을 결의한 신문사 지부들과 언론의 다양성과 지역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지부, 분회들이 함께 어깨를 걸 것입니다.

언론노조 산별 5기 집행부는, 두꺼운 방패를 뚫는 날카로운 창끝처럼 우리의 힘과 의지가 한 점으로 모일 수 있도록 지·본부의 투쟁 수위와 일정을 조율해 11월말∼12월초에 언론노동자의 총궐기를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 자부하는 자랑스러운 언론노조의 위원장으로서, 저는 조합원 동지들께 다시 한 번 힘차게 투쟁의 대열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언론탄압과 통제의 쇠사슬을 잘라내는 것 못지않게, 노동조합의 뿌리를 뒤흔드는 <타임오프제>를 무력화시키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입니다. 지난 7월 1일부터 강행된 <타임오프제>에 맞서, 언론노조는 통일적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사업장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교섭안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그 결과, 경인일보와 경향신문을 필두로 교섭승리 보고가 속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이용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정권과 자본의 술책 또한 만만치 않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노동탄압부를 자처하는 노동부 관료들은 산별 단일노조인 언론노조를 자신들 마음대로 상급단체로 규정하며, 위원장인 저를 비롯한 집행부 임원들의 임금지급을 막고 있습니다.
또한 MBC, SBS, YTN과 몇몇 지역방송들은 개악노동법의 그늘에 숨어서 교섭은 회피하면서 임금지급은 신속히 중단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권과 자본의 눈치나 보며 공정성이라는 언론의 대원칙은 외면하는 자들이, ‘법과 원칙’ 운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가증스러울’ 따름입니다.

 <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이들은 앞으로도 임금지급 금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언론노조와 단위 조합을 분리시키고 조합 활동을 약화시키는 행위를 노골적으로 시도할 것입니다. 상식적인 교섭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은 적어도 이 정권 아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와 집행부의 판단입니다.

 이번 대의원회는 이러한 상황판단을 받아들여, 언론노조가 단결과 연대의 구심점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현 조직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임금지급을 무기로 한 사측의 전횡에 지·본부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조합비 인상을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달여 동안, 각 협의회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MBC, YTN 등 장기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이 져 온 과도한 부담, 산별노조로서 언론노조의 역량에 대한 회의와 비판, 그리고 구조조정과 임금동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장의 조합원들에 대한 배려 등이 고민을 깊게 했습니다.

 그러나 노조와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이 정권이 추진되고 있는 노조탄압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담과 희생이 불가피하지 않겠는가, 정권과 사측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교섭에서 수세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 올바른 답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임금총액의 1.1%로 납부되는 조합비 중에서 0.1% 인상분의 용처는 일차적으로 파견 전임자의 임금보전에 쓰일 것입니다. 언론노조의 투쟁사업과 정책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민주언론실천위원장, 그리고 신문/방송/출판/인쇄의 정책 담당자 2명 등, 총 6명이 이에 해당합니다. 임금보전분을 초과하는 금액은 모두 기금으로 적립하여 사측이 지·본부 전임자 임금을 부당하게 지급거부할 때나 긴박한 투쟁 상황에서 일시 단위 지·본부의 전임 인원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를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이런 구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규모가 작은 지부의 교섭력이 보다 강화되는 효과를 얻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간 조합 규모가 작아 산별 일꾼을 내지 못했던 지부의 조합원들도 급여부담 없이 산별노조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에 가계의 주름이 깊어가는 줄 잘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조합비를 인상하는 데에는 이런 판단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부디 조합원 동지들의 깊은 이해를 머리 숙여 구합니다.
조합원들께 더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만큼, 산별중앙 집행부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산별노조로서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의원들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체계적인 조합원 교육사업과 지·본부 투쟁에 대한 조직적인 지원 역량을 확보해 산별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오늘 언론노조의 향후 10년을 규정할 작지 않은 변화를 말씀드리면서 지난 10년을 돌아봅니다. 2000년 11월, 우리가 언론사 노동조합의 느슨한 연맹체이던 언론노련에서 단일 산별노조인 언론노조로 전환한 것은 뼈저린 반성의 결과였습니다. 87년 민주화대투쟁의 성과로 88년에 언론노련이 결성되었고, 언론노동자들은 해고와 투옥을 감내한 치열한 투쟁으로 한 발 한 발 언론민주화를 향해 전진했습니다. 고용과 처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대투쟁 이후 10년 만에 닥쳐온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언론노련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선무당 칼춤처럼 자행되었던 무분별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산업적 차원, 국가적 차원의 변화에 무기력한 기업별 노조 체계의 한계를 절감하고 이를 처절하게 반성한 결과가 언론노조 건설이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IMF외환위기는 지나갔습니다. 언론노동자들의 각오도 그 속도만큼 빠르게 흐려졌습니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는데도 여전히 기업별 노조 체계에 안주하는 관성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작은 지부보다 큰 지부가, 가난한 지부보다 형편이 나은 지부가 오히려 산별노조로 전진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무늬만 산별노조라는 자조와 체념은 지난 2007년 언론노조의 내홍으로 불거졌고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열심히 싸웠다고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자행한 언론악법 날치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못한 것, 그리고 낙하산 사장들을 앞세운 집요한 언론장악에 한 발 한 발 밀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산별노조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MBC, KBS, YTN 등의 투쟁 사업장에서 8명 해직, 170명 징계, 60명 기소라는 핏자국이 선명한데 어느 곳에서도 아직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2년 반 넘게 진행되어 온 언론악법 저지투쟁도 교착상태입니다. 임·단투 투쟁에서도 시원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언론노조란 무엇인가?’ 라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처럼 자조하고 체념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언론노조의 힘이 부족해 소용에 닿지 않는다고 해서 단결과 연대의 끈을 풀어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묶어 세우는 것이 오늘의 고난을 돌파하는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10년 전의 뼈저린 반성, 산별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 자부하는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산별노조의 깃발을 높이 들고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외치고 싶습니다. 언론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힘을 쏟고 싶습니다. 동지 여러분의 격려와 질책이 이 모든 바람과 동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가내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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